청계천 문제 선거공약 1936년에도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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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경성부회의원(京城府會議員:지금의 서울시 의원격) 선거에 즈음해 청계천 문제의 해결을 공약으로 내건 한 입후보자의 선거 관련 문건이 4일 공개됐다.

올해 5월 개관한 서울역사박물관이 자료 발굴·입수 과정에서 확인한 이 문건은 쇼와(昭和) 11년(1936년) 8월에 작성됐다.

당시 사회 저명인사들이 강영호(姜永皓)라는 인물을 경성부회의원 입후보자로 추천하면서 내놓은 네 가지 정견(政見)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초등 교육기관 확충▶시가지 계획▶청계천 합리적 해결▶사회사업 시설 확충 등이다.

이중 청계천 문제에 대해 이 문건은 "현재의 청계천을 속히 暗渠(암거:복개) 又는(또는) 運河化(운하화)하야 府民(부민)의 衛生保健風致交通(위생보건풍치교통)에 利便(이편:이익과 편리)이 되도록 企圖(기도)할 것임"이라고 적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내내 환경문제가 심각했던 청계천이 일제 강점기에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복개나 운하화가 검토됐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의미가 있어 보인다.

서울역사박물관의 김영관 유물과장은 "일제시대에도 청계천이 선거 공약으로까지 논의되었음을 보여주는 이 문건을 통해 청계천 문제가 단지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논의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 세종 때 시작됐고 영조 때엔 하수 악취 제거를 위해 준설 논란도 벌였던 청계천 문제가 일제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과장은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이 문건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받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이 문건의 뒷부분엔 강영호씨를 추천했던 저명 인사들의 명단이 올라 있다.

당시 조선상업은행 상무 이노우에 기요시(井上淸), 1938년 대동일진회 회장에 취임한 윤갑병(尹甲炳), 두산그룹 창업주 박승직(朴承稷), 1949년 반민특위에 구속된 화신백화점 설립자 박흥식(朴興植), 경성방송국 개국에 관여한 방태영(方台榮)씨 등이 강씨를 추천한 인물들이다.

이 문건에는 또 당시 경성부(서울)의 모습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도 담겨 있다.

문건에는 "경성부는 구역 확장으로 면적이 3배나 늘고 인구가 25만이나 증가하야 일약 일본 7대 도시의 하나라고 하나 적어도 우리 경성부는 동양의 정치 도시요 문화 도시로서 또는 조선 수도로서 부끄럽지 아니한 당당한 대도시"라고 쓰여 있다.

한편 선거 후보로 추천된 강영호씨가 당선됐는지의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김과장은 밝혔다.

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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