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직장인 "돈보다 멋" 名品 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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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 압구정동의 한 유명 백화점 1층. 폐점을 앞둔 저녁 시간의 화장품 코너는 특별할인 기간이 아닌데도 20∼30대의 젊은 여성들로 북적거렸다. 퇴근길에 직장 동료와 일본산 수입화장품인 SK-II 매장을 찾은 회사원 金모(29·외국계 회사 근무)씨는 이날 명품으로 알려진 영양크림 한 개를 구입하는 데 30만원을 주고 샀다. 金씨는 온몸을 명품으로 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산 조르조 아르마니 정장을 차려입었고 어깨에는 샤넬 스카프를 둘렀다. 金씨가 차고 있는 시계는 카르티에, 들고 있는 가방은 구치, 구두는 페라가모였다.

金씨와 동행한 직장동료 朴모씨(27)도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있기는 마찬가지.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높은 세븐 진과 아테스토니 신발을 신은 그녀 역시 콤팩트형 파운데이션을 한개에 10만원 주고 구입했다. 金씨에게 명품을 사는 이유를 들어봤다. "사실 명품이라는 건 자기 만족과 같은 겁니다. 누가 알아줘서라기보다는 '연예인 누가 들었던 가방, 어느 잡지에서 보았던 구두가 바로 이제 내 거다'라는 데서 오는 일종의 자기만족이지요." 그러나 동행한 朴씨의 의견은 달랐다."저도 처음에는 그랬으나 지금은 스타일이 완성된 비즈니스 우먼으로서 태도를 갖추기 위해 명품 액세서리를 사용합니다."

직장인들 사이에 명품 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부유층에서만 유행하던 값비싼 의류나 가방·구두·액세서리 등의 소품류가 최근 전문직 종사자는 물론 일반 직장인들에게도 대중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구치 지갑에 코치 백 하나 정도 장만하는 것은 이제 직장인들에게 기본으로 통한다.

정보통신업종의 대기업에 다니는 정모(31)과장은 직장인 명품 바람의 가장 큰 이유가 "주변 시선에 민감한 한국인의 자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너도나도 명품을 찾아가는 풍조 속에서 나홀로 무관심하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해외 명품을 선호하는 요즘 직인장의 유형은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옆자리의 동료나 연예인들이 구매하니까 덩달아 흉내내는 '덩달이(미 투·me too)족', 중견 직장인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명품을 구매하되 과시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실속족',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부유층(부르주아)에 가깝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례 허식에 집착하지 않는 스타일의 '보보스(Bobos)'족이 있다.

보보스란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을 줄인 말로 이들의 대다수가 경제적으로 풍족해 유명 브랜드를 평상복처럼 입고 다니지만 틀에 박힌 패션을 싫어해 화려한 정장 차림에 운동화를 신거나 캐주얼한 액세서리를 하고 다닐 때도 있다.

직장인들의 명품구입 방법도 가지가지다. 휴가나 출장을 갔을 때 외국 면세점에서 명품 사재기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유럽 각국과 홍콩의 여름·겨울 정리 세일, 미국 독립기념일과 추수감사절 특별할인 세일 등 세계 각국에서 시행하는 계절별 특별할인 기간을 노려 쇼핑에 나서는 전문꾼까지 등장했다.

수입명품을 국내에서 팔리는 가격보다 30∼7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갈 일이 없는 국내파들도 명품을 구입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해외 출장 가는 직장 동료에게 구입을 부탁하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돈이 많이 들더라도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당당하게 사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인터넷에 수두룩한 온라인 명품점을 이용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직장인들은 모조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대문이나 이태원시장을 둘러본다.

유권하 기자

kh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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