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국방]한가지라도 최고기술 가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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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5면

로마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흥망성쇠는 중무장한 대규모 병력을 수단으로 영토의 지배와 재물의 찬탈을 통해 이뤄져 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가안보는 어떻게 결정될 것인가. 21세기를 여는 길목에서 우리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하다. 양보다는 질의 우수성이며 그 핵심은 기술력의 우위에 있다.

지난 10여년간 미국이 치렀던 여러 전쟁에서 사상자 제로(zero casualty)에 가까운 소설 같은 이야기가 가능했던 것은 기술력의 압도적 우위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우세한 항공력에 힘입은 바 컸다. 그 중에서도 돋보인 스텔스 항공기의 출현은 도심 빌딩의 전파차단을 위한 도료를 개발하던 어느 일본인의 기술로부터 시작되었다. 첨단 기술에 관한 한 군사부문과 민간부문의 벽이 허물어져 간다는 사실은 더 이상 화젯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한동안 '못된' 젊은이들의 행패로 치부됐던 해킹이 이제는 사이버전쟁의 강력한 타격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식음을 전폐하면서 게임에 몰두하고, 한강 고수부지에서 벌어진 국내 최고수 게이머들의 대결에 20만명이 운집하는 것을 볼 때 한국이 가질 수 있는 유효한 대안은 어쩌면 해킹부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옛말에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어라'는 말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전쟁 수단이 첨단 정밀화하는 오늘날 경제권에서 돈을 벌어와 군사안보에 평화보험료를 가져다 쓰는 식으로는 우리의 원초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열가지 2등 기술보다 하나의 최고 기술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경제이윤의 추구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에 있어서도 월등하게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는 것일 게다.

유달리 힘센 나라들에 둘러싸인 '땅 덩어리 좁은 한반도'의 한계를 벗어나는 길은, 우리 조상들이 주창했던 부국강병의 개념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라는 질적 개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기술력과 국가안보는 이제 한 몸을 가진 두개의 머리와 같다. 최고의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을 누빌 때 한국의 국가안보는 어느새 성큼 강대국의 반열에서 자리매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빈곤을 유산으로 받았다면 이제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은 좋은 옷과 음식이 아닌 최고의 기술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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