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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고양이'인기 체 리 필 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8면

"체리필터가 인기라구요? 어제 남대문에 같이 쇼핑을 갔는데 아무도 우리를 못알아 보던데요."

"오늘 MBC 뮤직캠프에서 차트 1위 후보라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어요."

'낭만 고양이'로 가요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4인조 모던 록 밴드 체리필터는 아직도 자신들의 인기를 실감 못하고 있었다. "두 번째 앨범 '메이드 인 코리아?'를 내고서 10주째 한 번도 쉬지 못했다"는 그들. 아이로니컬하게도 "인기를 체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정도로 방송국에 불려 다니느라 바빴다"는 말이 이들의 인기를 대신 설명해줬다.

체리필터의 인기는 요즘 가요계에서 '이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홍대앞 라이브 클럽 출신으로 앨범 발매 10주만에 13만장 판매라는 기록을 낸 것이다. 라이브 전문 밴드로서 고집스럽게 오락 프로 출연을 사절해온 점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수치다.

"우리는 갑자기 '뚝딱'해서 나온 밴드가 아니거든요. 1997년에 결성한 이래 지금까지 매일 만났죠. 연습을 안하는 날에는 컴퓨터 게임이라도 같이 해야 직성이 풀릴 만큼요."(조유진·보컬·상명대 영어교육과)

"라이브 클럽에서 화요일 밴드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클럽에서는 초보 밴드가 제일 손님이 없는 화요일에 무대에 서거든요. 다음엔 수요일, 그 다음엔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우리는 그렇게 차례로 한계단씩 올라가 주말 무대에까지 섰어요."(정우진·기타·고려대 무역학과)

멤버 모두 털털한 성격이라 스스럼 없이 얘기에 탄력이 붙는다. 밤 10시 30분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1시간여 사진촬영을 마칠 때까지 온갖 장난스런 표정으로 주위를 웃게 했던 친구들. 막상 음악 얘기가 나오자 사뭇 진지해졌다. 그것도 잠깐. 한 멤버가 "상업적인 음악보다는 누군가 우리 음악을 들어줄 것이라 기대…"라며 얘기하는데 옆에서 연윤근(베이스·명지대 연영과)이 끼어든다. "아, 얘기가 자꾸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면 안됩니다…." 자정이 돼서야 마친 심야 인터뷰가 주는 무게와 긴장을 가볍게 풀어낼만큼 충분히 유머를 갖췄고, "2집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우리에겐 큰 '체험'이었다"고 입을 모을 만큼 진지했다.

'낭만 고양이'는 '나는 낭만 고양이'란 후렴이 금방 귀에 착 달라붙을 만큼 쉬운 멜로디. 기타·베이스·드럼 연주와 조유진의 시원하고 거침없는 목소리가 역동적으로 어울린다.

록 밴드가 발휘할 수 있는 매력을 한껏 살리면서도 난해하지 않게 들린다는 게 이들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특히 조유진의 폭발적인 창법은 멤버들로부터 '악기 이상의 악기'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조유진은 각 멤버들을 "능글맞은 베이스""저돌적인 기타 플레이""빈 부분을 꽉 채우는 드럼"이란 말로 추켜세운다.

'낭만고양이'의 가사는 크라잉 넛의 재주꾼 한경록이 조유진의 이미지(고양이)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한다. 조유진은 '낭만 고양이'를 '슬픈 고양이'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신나게 들리지만 사실은 외롭고 우울한 내면을 그리고 있는 시적인 곡"이라며 "이 노래를 듣고 울고 싶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하드코어·펑크·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 일부에서는 "색깔이 없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없지도 않다. 이에 대해 손상혁(드럼·고려대 신문방송학과)은 "유행을 좇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감성이 가는대로 만든 솔직한 곡들"이라고 말했다. 25~27일 폴리미디어 씨어터(02-553-1664)에서 라이브공연을 갖는다. "공연을 마치자마자 바다로 달려가고 싶다"고 했다.

글=이은주 기자·사진=오종택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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