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화 간판 위에 녹여낸 대중의 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영화 주인공들과 함께 제일 먼저 울고 웃던 사람은 간판장이였다. 가장 극적인 장면을 잡아 남녀 배우를 멋지게 그려내는 그들 손에서 극장 앞을 서성이던 손님 마음이 움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영화 간판장이는 몇 명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 극장들이 단관에서 복합상영관으로 스크린 수를 늘리면서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뽑아낼 수 있는 와이드 컬러 사진 출력으로 간판 제작 방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은 추억 속 유물로 사라지고 있다.

박태규(37)씨는 그 몇 안 남은 영화 간판장이 가운데 한사람이다. 호남대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1991년부터 광주극장 미술실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는 뚝심있는 간판장이로 꼽힌다. 미술을 공부하고 영화 간판일에 뛰어든 속내가 만만치 않은 데다 "선배들이 떠나는 극장 미술실을 지키겠다"는 뜻이 다부져서이다.

28일부터 11월 6일까지 광주 롯데화랑에서 열리는 '마지막 영화간판장이 박태규'는 박씨가 내보인 의지를 전시장에서 확인하는 개인전이다. 한국 영화사와 영화간판사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도록 입간판과 걸개그림을 활용해 입체적으로 꾸몄다.

그는 지난 봄 열렸던 '2002 광주비엔날레'의 프로젝트3 '집행유예'에서도 헌병대 식당을 '광주탈출'이란 가상 영화의 간판으로 채워 관람객들에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해 주목받았다.

간판이라는 싸구려 이미지와 대중성을 빌려와 현실비판적 내용을 담는 그의 '장이 의식'은 캔버스 위에 올라앉은 '작가'들과 다른 풍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시작들은 www.artmov.com에서도 볼 수 있다. 062-221-1808.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