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먹었습니다" … 감사편지 쓴 '건빵 도시락 동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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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부끄럽구나

'도시락 잘 먹었습니다.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해 12월 24일. '건빵 반찬'을 먹고 난 결식 아동들은 빈 도시락에 '고맙게 잘 먹었다'는 쪽지 글을 담아 도시락 업체에 보냈다. 이날 이 업체는 건빵과 메추리 알.참치볶음.단무지를 결식 아동들에게 제공했다.

'부실 도시락'에도 고마워할 줄 아는 결식 아동들의 때묻지 않은 동심이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전북 군산시 복지관은 13일 결식 아동들이 자원봉사자들에게 건네준 쪽지를 공개했다. 이 쪽지들은 매일 10~20여통씩 빈 도시락 속에 담겨 제조업체에 전달되고 있다. 건빵이 배달됐던 날은 크리스마스 전날이어서인지 평소의 두배나 되는 40여통의 쪽지가 들어 있었다.

부실한 반찬과 배달 시간이 오래돼 식어버린 찬밥에도 불구하고 결식 아동들은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등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쪽지에 담았다. 일부는 빈 도시락 안에 껌.초콜릿 등을 담아 보내기도 했다. 이날 도시락을 배달했던 이모(47)씨는 "부모의 입장에서 해맑은 눈동자의 어린이들에게 건빵이 든 도시락을 건네기가 정말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함께 사는 할머니가 일을 나가 혼자 자원봉사자가 배달해주는 도시락을 먹는다는 정모(13.중1)양은 "추운 날 집에까지 도시락을 배달해 주는 자원봉사 오빠들이 너무 고맙다"며 "앞으로는 맛있고 영양가 높은 도시락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자원봉사자는 "이번 부실 도시락 파문은 어린이의 불만 때문에 불거진 것이 아니라 보다못한 자원봉사단체에서 언론에 제보한 것"이라며 "동심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적절한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송웅재 군산 부시장(시장 구속으로 권한대행 중)은 건빵 반찬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에게 "운영비(500원)를 제외하면 2000원짜리인데 그 정도면 양호한 것 아니냐"고 말해 물의를 빚고 있다.

송 부시장의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면서 군산시청 홈페이지 등에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탁상행정' '건빵 도시락을 공무원 점심으로 제공하자'는 등의 비난이 빗발쳤다. 또 '결식 아동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송 부시장은 공식사과하고 책임져라'는 글이 오르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현재 납품되는 2000원짜리 도시락의 원가는 1000원 안팎'이라며 '도시락업체와 공무원 간 납품계약에 비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여론의 화살의 빗발치자 송 부시장은 13일 "결식 아동의 도시락 공급과 관련, 물의를 빚은 점에 대해 결식 아동과 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군산=장대석 기자

*** 급식업체 '점심 도시락' 앞으론 영양사가 점검

앞으로 저소득층 아동에 제공되는 점심 메뉴는 의무적으로 영양사의 영양 상태 검증을 받아야 한다. 또 급식 공급업체는 급식 메뉴를 해당 지방자치단체 등에 사전 보고해 적합 여부를 점검받아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부실 도시락 파문과 관련, 이 같은 대책을 즉각 시행하기로 했다고 13일 발표했다. 복지부가 마련한 '방학 중 아동급식 부실 방지대책'에 따르면 13일부터 급식 공급업체들은 급식 메뉴 작성 때 영양사에게 자문해 사전에 급식 메뉴를 제출해야 한다. 복지부는 이행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불시점검과 급식 현장 확인작업을 할 방침이다. 복지부는 또 원활한 급식을 위해 지역아동센터와 사회복지관, 민간.종교단체의 급식시설을 급식소로 확대 지정.운영키로 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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