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뿌리내린 美學 한국적 美感 단절시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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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미학과 미술사의 씨를 뿌린 건 일제 강점기 일본 학자들이었다. 1924년 조선총독부가 서울에 경성 제국대학을 설립해 미학 강의를 시작한 지 78년.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일본 히로시마대학에서 열렸던 '제 53회 일본 미학회 전국대회'는 '일본 근대미학과 예술사상의 컨텍스트'를 큰 주제로 해 그 한 부문으로 한·일간 미학 교류를 다뤘다.

한국에서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인범(47·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연구위원)씨는 '한국 근대미학의 성립과 그 성격-일본미학과 관련하여'란 제목으로 발표해 주목받았다. 한국 미학과 미술사가 그 이식성(移植性)으로 인해 지니게 된 경직성과 분열증, 삶으로부터의 격리현상이 일본 근대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이 연구위원은 발표문에서 "미학과 미술사가 일본을 통해 이식됨으로써 지역·시기·장르별 분열성이 더 두드러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경성제대를 통해 일방적으로 들어온 미학은 조선의 고유한 미감과 단절을 불러오며 단순한 예술학 차원으로 떨어져버렸다는 것이다.

경직·분열성 오늘까지 이어져

1927년 경성제대에 부임해 40년 말까지 미학개론, 서양 미술사 등을 강의한 우에노 나오테루(1882∼1973) 교수는 요절한 고유섭(1905∼44)과 철학적 미학에 기울었던 박의현 두 제자를 길러냈는데 그중 서울대 교수였던 박의현을 경유해 그의 제자인 임범재 홍익대 명예교수로 흘러내린 일본 미학의 전통은 '예술없는 메마른 미학'이 한국 미학의 전통으로 자리잡는 주춧돌을 놓았다는 설명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일본인들 사이에 논란을 불러온 건 일본 미학의 한국 이식이 "식민지 지배논리, 즉 사대주의·반도적 역사 정체성 이론·내선 일체사상·만선사관(滿鮮史觀)·황국 신민화정책 등에 직·간접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대목이었다.

식민 지배논리와 직간접 연결

"조선은 늘 강국 사이에 놓여있어서 사대주의에 몰두하고, 그 미술에도 독창적인 정채가 결핍되어…"라고 쓴 세키노 다다시의 『조선미술사』나, 식민지 조선화단에 신일본화를 전범화하고자 시도했던 마사키 나오히코의 조선미술론을 이 연구위원은 '식민정책학적 예술 담론'이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일본 원로 미학자들은 '아시아가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절박한 시점에서 일제 미학의 이식은 그리 단순하게 평가할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내놓더라"고 이 연구위원은 전했다.

서구 사조까지 무비판적 수용

이 심포지엄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를 이 연구위원은 '미학이란 도대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가'로 요약했다. 지배 이데올로기로 들어온 일본 미학이지만 한국 미학이나 미술사, 제예술장르, 예술제도, 정책 등을 포함한 삶의 세계에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거쳐 미국의 영향권으로 넘어간 한국 미학이 영어 분석은 다루면서 정작 한국어 분석은 하지 않는 것이 그 한 방증이라고 지적한 이 연구위원은 "각종 장르 용어나 비평 용어를 여전히 일본 것을 차용해 쓰면서 고유 용어 연구는 밀어놓고 있는 한국 미학계를 일본인들은 낯설어 한다"고 씁쓸해 했다.

"일본 미학이 문을 열어놓은 뒤 서구로부터 밀려온 유행의 파도-독일 관념론, 구조주의, 분석철학적 미학-에 정처없이 휩쓸려내려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 우리 삶의 그 저주받은 흔적이 일제강점기에 선명하게 찍혔다"는 것이 이 연구위원의 결론이다.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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