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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과 천국, 현실과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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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표현하는 지옥·연옥·천국은 어떤 모습일까. 그게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연극을 그냥 외면하지는 못할 것같다. 연극 '단테 신곡 3부작'(11월 1∼7일, LG아트센터)은 그런 호기심에 대한 독특한 해답이 담겨 있다.

제목 그대로 이 작품은 7백여년 전 단테가 쓴 『신곡』을 연극으로 만든 것이다. 연출가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토마스 판드르(39)로, 세계 연극계가 주목하는 신예다. 독일 함부르크의 연극 명문 탈리아극장이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그를 초빙해 만든 화제작이다.

연극은 '지옥', 그리고 '연옥과 천국' 편으로 나누어 공연한다. '지옥-영혼의 책'은 단테가 지옥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기다. 음침한 지하 세계에는 반라의 영혼들이 창백한 얼굴로 물 위를 떠다니고 있고,호색한들은 푸줏간의 고기처럼 난간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이윽고 망각의 강인 '레테의 강'을 건너자 기억 능력을 잃게 된 단테는 '연옥과 천국-우울함과 빛의 영역'에서 자신을 천상으로 인도할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판드루는 이런 과정을 배우들의 과격한 움직임과 현란한 조명, 상징적인 도구, 신비한 음악들로 표현한다. 특히 물의 이미지는 시종 눈여겨봐야 할 대상이다. '지옥' 편에서 물은 죄의 늪이자 전쟁과 악으로 가득찬 현실을,'연옥'과 '천국' 편에서는 각각 암울한 기억을 씻는 정화(淨化)와 기원을 표상한다. 실제로 무대는 3만2천ℓ의 물로 넘실대는데, 배우들은 이를 헤집고 다니며 연기를 한다.

판드루는 고국 슬로베니아는 물론 크로아티아·보스니아 등 아직도 민족간의 다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발칸 제국(諸國)들의 참상을 이 작품에 투영했다고 한다. 이런 점은 '나의 이름은 발칸이다'라는 천사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지옥' 편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발칸의 현실을 『신곡』의 이야기에 덧씌운 셈이다.

연극에서라도 이런 반목을 극복하려는 몸짓인가. 판드루 외에 다양한 국적의 '발칸의 전사'들이 이 작품의 스태프로 참여했다.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집시의 시간''언더 그라운드'로 범상치 않은 재능을 보인 보스니아인 작곡가 고란 브레고비치(음악), 세르비아인 마리나 헬만(무대),크로아티아인 레오 쿨라스(의상), 슬로베니아인 리비아 판드루(드라마투르기) 등이 그들이다.

1시간30분의 '지옥'편은 1∼3일 금 오후 8시,토 오후 6시,일 오후 3시에, 3시간의 '연옥과 천국'은 5∼7일 오후 7시30분에 공연한다. 2만∼5만원. 02-2005-0114.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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