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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列國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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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국(國)은 제후의 봉토를 말한다. 대부(大夫)의 봉지를 의미하는 가(家)와 합쳐 국가(國家)가 된다. 열국(列國)은 여러 제후의 나라들이다. 쇠약해진 주(周)나라가 서쪽 오랑캐에 쫓겨 낙양(洛陽)으로 도읍을 옮겼을 때부터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 550여 년간을 다룬 역사소설이 『열국지(列國志)』다. 『좌전(左傳)』 『전국책(戰國策)』 『사기(史記)』 등을 총망라했다.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제자백가(諸子百家) 등 중국의 모든 사상은 선진(先秦)시대에 나왔다. 이후의 사상사는 그 해석에 불과했다.

『열국지』는 인재학의 교과서다. 제양공(齊襄公)의 큰아들 공자 규는 스승으로 관중(管仲)을 모셨다. 포숙아를 모시던 작은아들 소백은 규와 왕위를 다퉜다. 당시 관중은 소백을 화살로 쏴 죽이려 했다. 다행히 화살은 허리띠에 맞았다. 제 환공(桓公)이 된 소백은 포숙아의 천거를 받아들여 개인의 원한은 잊고 관중을 재상으로 등용했다. 파격이었다. 그는 관중을 최고로 대우했다. 나라의 큰일이 있으면 먼저 관중에게 결재를 받은 뒤 자신에게 알리도록 했다. 관중은 제 환공을 첫 패자(覇者)로 만들어 보답했다. ‘관포지교(管鮑之交)’와 ‘믿지 못하면 맡기지 말고, 일단 맡겼으면 끝까지 믿는다(疑人不用 用人不疑)’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이렇듯 『열국지』에는 영명한 군주, 현명한 신하, 군사모략가, 달변의 외교가 등 수많은 영웅이 등장한다. 100편 이상의 일화와 200여 개의 고사성어가 춤춘다.

『열국지』를 관통하는 두 주제는 임현도치(任賢圖治)와 덕치(德治)다. ‘자고로 흥하고 망한 나라를 살펴보라. 모든 원인은 당시에 어진 신하를 등용했느냐, 아니면 간신을 등용했느냐에 따라 판가름 났다(總觀千古興亡局, 盡在朝中用佞賢)’는 소설 마지막 문장은 나라의 흥망이 인재 등용에 달렸음을 역설한다. 또 ‘힘은 이긴다. 그러나 자고로 오래간 예가 없다. 힘보다 강한 것은 덕이다. 열국이 망한 것은 무엇인가? 덕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덕 없는 무(武)의 허황됨을 강조한다.

최근 박근혜 의원이 트위터로 『열국지』 일독을 권했다. 약육강식, 대자병소(大者倂小), 패악무도, 권모술수는 타산지석으로 삼자. 대신 그 속에 녹아 있는 중국 문명의 원형(prototype) 읽기는 놓쳐선 안 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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