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 대지진 그 후 10년] 上. 일본 최고 안전도시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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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인 1995년 1월 17일 고베와 오사카를 잇는 한신(阪神)고속도로가 지진으로 옆으로 무너져 내렸다(上). 일본의 '안전신화'도 무너졌다. 이후 한신고속도로는 1년8개월여 동안 최고의 내진설계를 통한 고속도로로 탈바꿈했다.[지지통신 제공]

일본 고베(神戶)시에 사는 주부 나가오카 아키코(長岡照子)는 요즘도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잔다. 지진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서다. 그는 1995년 고베 지역을 강타한 한신(阪神)대지진 때 집이 폭삭 무너져 죽을 뻔했다. 손전등은 베개 옆에 아예 안전핀으로 고정시켜 놨다.

"대지진의 교훈요? … 자기 목숨은 자기가 지킬 수밖에 없다는 거죠."

지난 7일 일본 오사카(大阪)와 고베를 잇는 한신고속도로 히가시나다(東灘) 구간. 길이 200km의 한신고가고속도로는 1964년 6월 "일본의 안전신화를 창조한다"며 시끌벅적하게 세워졌었다. 하지만 95년 1월 17일 리히터 규모 7.3(진도 7)의 지진에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당시 외신들은 "일본의 자존심이 함께 무너졌다"고 표현했다. 이 도로는 리히터 규모 8.1의 강진에도 견디게 설계돼 있었지만 옆으로 흔들리는 경우에 대비한 것이지 위아래로 흔들리는 직하(直下)형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세운 한신고속도로는 달라졌다. 철근 강도를 3배로 늘리고 교각의 기둥도 폭을 2배로 키웠다. 한신고속도로공단의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勉)설계계장은 "직하형이건 뭐건 어떤 지진이 와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대지진 당시 6만6000여평 내 992개 건물 중 90%가 파괴되거나 불타버린 고베시 나가타(長田)구. 과거의 목조건물 밀집촌은 이제 단단히 지은 최신식 주택과 대형 고층건물의 숲으로 바뀌었다.

건물만 튼튼해진 것이 아니다. 소방대책도 완벽하다. 10년 전엔 지진 발생 후 하루가 지나도록 불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다. 수도관이 터져 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고베시는 나가타구 등 시내 곳곳의 지하에 개당 100t짜리 방화 수조 200개를 묻었다.

불과 12초의 흔들림-. 그러나 경제적 피해 10조엔, 복구사업비 16조3000억엔이 소요된 미증유의 재해 '한신대지진'으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고베는 안전 면에서 어느 곳보다 '강인한 체질'로 변모했다. 지난 6일 고베 도심 산노미야(三宮)에 위치한 고베시청 제1호청사 8층. 이곳 위기관리실 책임자는 현재 시청 서열 3위다. 95년 당시 총무국 총무과 소속 말단직원 1~2명이 하던 업무가 몇 단계 격상된 것이다. 이제는 24시간 고베시내 전체를 커버하는 방재 모니터가 운영 중이다. 자위대와 적십자사, 고베해상본부 등과의 전용 핫라인도 생겼다. 해안지역을 위주로 52곳에 반경 300m까지 들리는 재난 경보 용 옥외 스피커도 설치했다..

신속한 구조체제도 구축했다. 95년 당시엔 소방 구조인력들이 만 하루가 훨씬 지나서야 고베에 본격 투입됐다. 총괄지휘하는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 직후인 95년 6월 긴급소방원조대 조직이 출범했다. 지난해 10월 니가타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인근 센다이(仙台).사이타마(埼玉)의 소방본부가 구조헬기를 띄울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4만평의 마을 건물 중 90%가 파손되거나 소실된 고베시 노다(野田)북부 지구.

이곳 '마을만들기 협의회' 아사야마 사부로(淺山三郞)회장은 "대지진으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주민 네트워크'의 소중함"이라고 말했다. 어느 집에 몇 명이 살고 있고, 혼자 사는 노인이 어디 있는가를 아는 것은 인근 주민들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지진 당시 어떤 형태로든 구조된 사람은 3만5000명이었다. 이 중 80%인 2만7000명은 가족 및 이웃 주민이 구출했다. 아사야마 회장은 "총 1000여가구 중 850가구의 주민정보를 네트워크화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고베시 전체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고베시는 6433명의 희생이라는 아픔을 딛고 '안전도시'로 탈바꿈 했다.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는 '자조(自助)'와 정부.지자체의 공조(公助),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와의 공조(共助)가 모두 충실한 것이다.

고베=김현기 특파원

*** 고베 위기관리실 오카다씨

"쓰나미 1분 만에 경보 … 20분 안에 대피 가능"

고베시 위기관리실의 오카다 이사무(岡田勇.사진)위기대응담당관은 "자연재해를 막을 순 없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그 최소화에 10년을 매달려 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남아시아를 강타한 것과 같은 규모의 쓰나미가 고베에 온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현재 고베시가 접해 있는 태평양 일대에서 난카이(南海)와 도난카이(東南海)에서 지진이 동시에 발생한다고 가정할 때 쓰나미가 고베에 도착할 때까지 90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돼 있다. 지진이 발생하면 불과 1분도 안 돼 기상청에서 쓰나미 경보가 나오게 된다. 방재실에 즉각 벨이 울리며 해안에 설치된 옥외 마이크와 호별(戶別) 수신기를 통해 피난 방송을 한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1~2분에 불과하다. 해안에서 2km 떨어진 쓰나미 안전지역까지 대피하는 데 20분이 채 안 걸린다. 물 샐 틈 없는 시스템이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고베시가 지난 10년간 얻은 교훈이라고 하면.

"하드웨어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갖춘다. 또한 재해가 닥쳤을 때의 소프트웨어적인 노하우도 최대한 활용한다. 예컨대 고베에 있는 인공섬인 포트아일랜드와 시내를 연결하는 해저터널을 만들어 유사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재해 전문가뱅크'를 구축해 다른 지역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필요한 분야의 전문가를 즉각 파견할 수 있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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