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한국에도 움트는 클러스터 :애니메이션·도자기… 지자체 주도속 '힘모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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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부천시 상동 경기디지털아트하이브(DAH) 종합지원센터에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드림픽쳐스21의 김일권 사장. 그는 지금 중국 상하이(上海)에 머물면서 현지 업체와 TV용 애니메이션을 공동 제작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지난 7월 DAH의 마케팅팀과 함께 상하이 애니메이션 박람회에 참가했을 당시 중국 업체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또 중국에서 6천여개의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선양(瀋陽)텔레콤은 DAH 입주 업체가 만든 출판만화·애니메이션·게임 등 각종 콘텐츠를 일괄 공급받는 장기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DAH는 문화관광부·경기도·부천시가 모두 1백83억원을 들여 만든 애니메이션·캐릭터·게임 관련 벤처집적 시설. 드림픽쳐스21 박재형 기획실장은 "애니메이션 등 문화콘텐츠 관련 업체들이 한곳에 몰려있다 보니 외국업체들의 사업 협력·교류 제안이 활발히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부천시가 추진 중인 애니메이션·출판만화·게임 등 문화콘텐츠 클러스터(용어해설 참조)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시청을 중심으로 30분 거리 내에 DAH와 같은 벤처집적시설과 각종 지원센터·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송내역 앞 6만여평은 '송내첨단문화사업단지'로 지정해 '문화콘텐츠 특구'로 만드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문화콘텐츠 클러스터를 향해=부천시에 소재한 문화콘텐츠 생산 업체는 조만간 30곳이 넘을 전망이다. 지난해 5월 부천시가 문화관광부로부터 전국 4대 문화산업단지로 지정받을 당시 관련 업체는 5개에 불과할 정도로 산업기반이 극히 취약했지만 지금은 '부천=애니메이션·출판만화의 도시'로 인식될 정도로 성장했다. 1998년부터 꾸준히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온 때문이다.

부천시는 98년부터 부천만화축제를, 99년부터는 국제대학애니메이션 페스티벌(PISAF)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지난 6일 끝난 올해 만화축제의 경우 출판만화 박람회에 해당하는 국제코믹북페어를 열어 9개국 46개 출판사가 각종 만화책을 선보였다.

지원사업도 일찍 시작했다. 2000년 출판만화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부천만화정보센터를 개소했고, 지난해는 국내 최초의 한국만화박물관을 열었다. 또 부천시가 12억9천만원을 출자한 부천카툰네트워크(자본금 30억9천만원)가 2000년 설립돼 출판만화 유통사업을 벌이고 있다. 부천만화산업지원센터에는 창업보육단계에 있는 15개 출판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 개발업체가 입주했다.

본격적인 문화콘텐츠의 산업화는 DAH 설립으로 시작됐다. 지난 3월 문을 연 DAH에는 인디펜던스·이현세엔터테인먼트 등 애니메이션 관련 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다음달 초엔 캐릭터·게임 개발업체 위주로 9개사가 더 입주한다. 업체들간 상호 협력을 통해 하나의 애니메이션으로 게임·캐릭터 등 다양한 부가생산물을 만드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부천시는 30억원을 들여 업체들이 공동 이용할 수 있는 각종 장비를 이달 말까지 도입하고, 벤처캐피털 등과 연계해 30억원의 투자재원도 마련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수석연구원은 "부천 문화콘텐츠 클러스터가 다른 지자체보다 앞서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성과물이 나오지 않은 만큼 성공 여부를 논하기엔 이르다"고 지적했다.

또 한 건물에 관련 업체들이 집적해 있고 이들 업체가 공용장비를 함께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에 한계가 있다. DAH 이상곤 사무처장은 "클러스터 내 업체들이 애니메이션을 함께 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부가가치 생산물을 만들어야 진정한 클러스터라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 중심의 산업구조가 쉽게 재편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부천 클러스터의 성공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특히 서울시가 상암동 월드컵공원 주변에 2만평 규모의 디지털미디어센터를 건립할 계획이어서 서울과의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원혜영 부천시장은 "인프라를 갖추는 데 수년간 주력한 만큼 부천 클러스터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됐다"며 "지자체끼리 소모적인 경쟁을 벌이기보다 서로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takeital@joongang.co.kr

지방자치단체들이 뛰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클러스터링(산업 집적화)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장기계획을 수립 중이며, 예산도 확보하고 있다. 대기업 유치노력을 하고 있고, 대학과 연구소들도 한 자리에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클러스터의 싹이 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돈과 인력이 태부족이며, 제대로 비전과 전략을 세운 곳도 흔치 않다. 애니메이션과 도자기 클러스터의 움이 트고 있는 부천과 이천시의 현황과 문제점을 살펴봤다.

편집자

◇클러스터(cluster)란=비슷한 업종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기업·기관들이 한 지역에 모여있는 것을 클러스터라고 한다. 대학·연구소(연구개발 기능)와 대기업·중소벤처기업(생산·아이디어), 벤처캐피털·컨설팅 등의 기관(각종 지원기능)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정보·지식 공유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산업집적(군집)지로 번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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