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보기엔 … 충무로 잔혹극 어디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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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마약·장기 밀매조직에 아이들이 납치된다. 아이들은 훔친 신용카드로 돈을 인출하는 범죄행위에 이용된다. 마약 정제 과정에 방독면도 없이 투입돼 독한 냄새에 픽픽 쓰러진다. 조직 두목은 “아이들은 장기는 숙성되지 않았지만 안구는 도려내 팔아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5일 개봉하는 영화 ‘아저씨’(감독 이정범)의 한 대목이다.

‘아저씨’는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한국 스릴러와 액션 영화의 트렌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세게, 더 잔혹하게’다. 적나라하게 묘사된 아동납치와 학대는 이를 위해 동원됐다. 폭력의 희생자로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든다. 장르영화로서 표현의 한계와 선정성의 경계지점은 어디일까. 충무로는 그 선택의 기점에 서 있다.

꽃미남 배우 원빈이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해 보여준 액션멜로 영화 ‘아저씨’. 하지만 아동 납치와 학대 등과 관련된 묘사에서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아저씨, 소녀를 구하다=‘아저씨’는 겉모습만 봐선 뤽 베송 감독의 액션물 ‘레옹’과 닮은 듯하다. ‘전당포 귀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웃과의 접촉을 꺼리는 청년 태식(원빈). 그가 유일하게 사람의 정을 느끼는 존재는 이웃집 여자아이 소미(김새론)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춰서 먹고 사는 소미 엄마는 마약중독자로 아이에겐 별 관심이 없다. 정에 굶주린 소미는 태식에게 살갑게 군다. 어느 날 마약 절도에 가담한 소미 엄마가 살해되고 아이는 납치된다. 특수요원 출신 태식은 소미를 구하러 나선다.

‘자체발광’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꽃미남 배우 원빈의 감성액션은 강렬하고 폭발적이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한없이 약한 이를 구한다’는 영웅담도 여성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아저씨’를 ‘레옹’처럼 받아들이기엔 개운치 않다. 소미를 비롯한 소위 ‘개미굴’에 납치된 아이들이 음침한 옥탑방에서 시체더미처럼 웅크리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폭력의 수위도 상당히 높다. 도끼로 이마를 찍고 동맥을 끊는 장면은 물론, 가슴에 칼 박아 넣는 소리를 마치 바로 옆에서 듣듯 고스란히 들려주는 건 약과다. 장기를 들어낸 뒤 꿰맨 자국이 선연한 소미 엄마의 시체가 발견되는 장면, 사람의 눈알을 도려내 담은 유리병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장면도 나온다. (나중에 아닌 걸로 밝혀지지만, 당시엔 소미의 눈알로 암시된다)

물론 소미는 구출된다. 하지만 그런 결말을 위해 아동 납치와 인권유린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이용됐다는 점이 문제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태식이 아이를 구출할 때 관객이 느낄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아이들과 관련된 장면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더 세게, 더 잔혹하게=올해는 표현 수위를 높이기 위해 유괴와 납치라는 극약처방을 쓴 한국영화가 자주 눈에 띈다. 연초 개봉한 설경구·류승범 주연의 ‘용서는 없다’에서 살인범 성호(류승범)는 누나의 원수를 갚기 위해 당시 부검의였던 민호(설경구)의 딸을 납치해 토막살인한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토막 낸 시체를 재조립해 민호로 하여금 딸인 줄 모르고 부검하게 만든다는 것.

지난달 개봉한 ‘파괴된 사나이’도 영수(김명민)의 유괴된 어린 딸이 사이코패스 병식(엄기준)에 의해 또 다른 아이 유괴에 이용되는 등 유린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는 돌아오지만, 영화는 아이가 이미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상황에 이르렀음도 함께 보여준다. 영화평론가 김형석씨는 “장르영화 특성상 필요한 극적 장치라고 해도 범죄 피해자로서의 아이들과 폭력을 구체적으로 연관시키는 영화 속 묘사는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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