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서 '이중간첩'찍는 배우 한석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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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석규(38)에 대한 인터뷰는 청문회를 방불케했다. 내년 설 개봉 예정인 '이중간첩'(감독 김현정·제작 쿠앤필름)의 촬영장인 체코의 프라하에서 지난 1일 오후(현지 시간) 만난 그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1999년 '텔미썸딩' 이후 3년이라는 시간상의 공백도 그렇거니와, 90년대 후반 최고 흥행 배우였던 그가 영화에 다시 얼굴을 보인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을 모았다. 티저(예고) 포스터에는 "마침내 그가 온다!"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새겨졌을 정도다.

"이 영화를 하려고 3년을 쉬었나 보다. 물론 부담이 크지만 마음은 덤덤하다. 평생 할 연기, 3년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앞으로도 5년에 한 편을 할지, 1년에 다섯 편을 할 지, 그건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는 전날 심야 촬영 탓에 다소 꺼칠해 보였으나 출연료(이번에 4억5천만원+흥행 수익 대비 α), 잦은 광고 노출 등 예민한 부분에 대한 질문도 피해가지 않았다.

-개런티 문제로 충무로가 흔들리고 있다.

"내 경우엔 합당하다고 본다. 한국 영화의 시장이 동남아로 확대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향후엔 더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건방지게 들릴 수 있으나 투자자에게 투자한 이상으로 돌려드리고 싶다."

-플러스 알파가 궁금하다.

"나도 정확히 모른다."(투자사와 제작사 대표만 알고 있다는 관계자의 설명이 뒤따랐다)

-형이 설립한 회사(힘픽처스)도 공동 제작사 아닌가.

"내 지분은 1%에 불과하다. 돈을 생각하면 돈 연기가 나온다는 형(한선규 대표)의 말을 명심하고 있다."

-그렇지만 광고엔 계속 나왔다.

"굳이 변명하자면 광고도 중요하다. 수입도 수입이지만 관객과의 연결고리가 아닌가. 배우의 이미지는 오히려 광고가 좌우한다. 영화 이상으로 광고를 고른다."

'이중간첩'은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첩보영화로 한석규의 아홉 번째 주연작이다. 위장 귀순한 북한 정보요원 임병호(한석규)가 남북 양쪽에서 버림받고, 남한에 숨겨진 북한의 고정간첩이자 그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윤수미(고소영)와 함께 제3국을 선택한다는 줄거리다. 체코에선 영화의 첫 장면, 즉 그가 북한 요원의 추격을 뚫고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망명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베를린엔 80년대의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고풍스런 도시 프라하가 선택됐다.

"집에 프라하라고 전화하니 아내가 '체코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라고 묻더군요. 농담이긴 하지만 저로선 첫 해외 촬영이고, 작품 또한 절대 간단하지 않아 어깨가 무겁다."

-숱한 시나리오를 받았을 텐데….

"대략 40편 가량 읽었다. 이번 작품은 첫인상에 반했다. 반드시 나와야 할 작품이라고 판단했다. 최근 남북문제를 다룬 것으로는 내가 출연했던 '쉬리'와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있지만 이번엔 접근 방식이 판이하다."

-차별성이 있다면.

"'쉬리'는 남북간 대결을, 'JSA'는 양측의 화해를 다뤘다. 그런데 '이중간첩'은 남쪽의 내부를 주로 다룬다. 오히려 남한에 의해 희생되는 인물의 얘기다.(시나리오엔 북파 간첩단, 유학생 간첩 조작사건 등이 나온다)"

-너무 익숙한 소재 아닌가.

"통일이 된다 해도 남북 문제는 무궁무진한 소재다. 해외로 눈을 돌려도 경쟁력이 충분하다. 영화의 임병호 같은 인물은 한국에나 있을 수 있다. 이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생을 한 신념으로 살아간 매력적 캐릭터다. 6∼7년 전쯤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씨의 영화화를 제안한 적도 있다."

-표현이 쉽지 않겠다.

"멜로도 가미되지만 다소 건조하게 갈 계획이다. 전체 톤도 비교적 낮게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주제는 매우 강하다. 자극적 소재가 팽배한 요즘 극장가에 낯설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는 '추억에 남는 영화'가 목표라고 했다. 영화 열 편 가운데 여덟 편이 스쳐 흘러간다면, 기억에 남는 나머지 두개를 하고 싶다는 것. 그래서 영화를 고르는 게 까탈스러워 보일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가 쉬는 사이 송강호·설경구·유오성 등이 떠올랐다는 질문엔 "솔직히 의식하지 않았다. 다 밥그릇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라며 여유를 보였다.

프라하=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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