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앞의 두 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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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현대가의 맏형이다. 그가 동생 몽준의 출마를 반대하고 있다. 아주 단호한 입장이란 측근들의 얘기다. 그는 몽준씨와의 대면을 피하고 있다. 그래서 추석 연휴도 일본에서 보냈다. 실은 그 직전 鄭의원이 형을 찾아가려 했다. 축구협회 일로 상의할 게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鄭회장은 얼른 회사 부회장을 鄭의원에게 보냈다. 할 얘기가 있으면 부회장한테 하라는 것이었다.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형의 반대는 동생으로선 부담이었다. 세상이 그것을 아는 것도 싫었던 것 같다. 한달여 전이다. 비공개 ROTC 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鄭의원은 형님을 언급했다.

"형님이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내용적으론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 그럴 뿐이란 얘기였다. 그 얘기는 정몽구 회장에게도 전해졌다.

"그런 말을 했단 말이야?"

鄭회장은 불쾌해했다. 현대자동차의 정경분리 선언은 그래서 나왔다. 그것은 鄭회장의 반대를 공식화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鄭의원은 그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대선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어려운 일을 당할까봐 겁을 먹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쩌다가 형님을 '겁쟁이'로 묘사했다.

정몽구와 정몽준. 정주영 회장은 두 아들을 다르게 키웠다. 몽구씨에겐 아주 엄했다. 조그만 잘못에도 심한 매를 때렸다. 그러나 몽준씨에겐 관대했다. 웬만한 잘못은 그냥 넘어갔다. 아버지의 술을 꺼내 먹는 일은 몽구로선 상상조차 못했다. 그러나 몽준은 가능했다. 진열장 속의 양주를 마셔도 무사통과였다. 그런 몽준을 형 몽구는 시기하지 않았다. 배다른 동생임에도 그랬다. 오히려 몽준은 몽구의 자랑이었다. 적어도 밖에서는 그랬다. 몽구씨의 오랜 친구 이원섭 변호사의 얘기다.

"동생이 공부 잘 한다고 엄청 자랑하고 다녔어요."

사실 몽구씨는 공부를 잘 못했다. 경복고 시절 그는 럭비선수였다. 주먹은 학교에서 1등이었다. 자연히 공부를 등한히 했다. 1년을 더 다녔다.

"그것이 몽구에겐 일종의 콤플렉스였지요. 그 때문에 어려서부터 다른 욕심을 안냈어요."

그의 그런 기질은 하나의 신조를 만들어냈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믿음이다. 그 때문에 그는 정치와 담을 쌓고 살았다. 결코 득이 될 게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출마도 유일하게 반대했었다. 아버지니까 따랐을 뿐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동생은 다르다고 본다. 그래서 만류하고 있다는 게 李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몽준은 달랐다. 어려서부터 자신감이 넘쳤다. 아버지의 후원이 그렇게 만들었다. 자신감은 꿈을 현실화했다. 월드컵도 그 중 하나다. 정치도 그래서 시작했다. 대권도전도 그래서 마음먹었다.

그러다 보니 두 형제의 사이도 벌어져갔다. 세상 사는 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몽구씨의 몽준씨에 대한 불만은 한마디로 이런 거다. 자기마음대로라는 것이다. 반대로 몽준씨도 형에 대한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그런 실례들이 수없이 많다. 그동안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들출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권력 앞에선 다르다. 모두를 벗기는 게 권력이다. 담장을 넘어와 커튼을 열고 이불을 들추는 게 권력이다. 돈이 피보다 진하다면 권력은 돈보다 진하다. 그것이 현대가의 오늘이다.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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