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부실 우려감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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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한동안 쭉쭉 뻗어나가던 금융주가 죽을 쑤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실적호전·외국인 매수 덕분에 증시의 효자 노릇을 했으나 이젠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한 것이다.

최근 가계대출 부실 우려감이 확산하면서 관련 주의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9월 들어 종합주가지수가 9% 하락하는 동안 은행업종지수는 16%나 떨어졌다. 카드주들의 급락세는 더욱 심각하다. 이달 들어 국민카드가 32% 하락하는 등 카드사들의 주가는 바닥권에서 맴돌고 있다.

<그래픽 참조>

은행업종·증권업종 지수는 24일 현재 지난 5월에 비해 각각 27%,42%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금융주가 상승세를 타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고객들이 꿔간 돈을 제때 갚지 않아 연체율 증가세가 점차 가팔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증권 이승주 연구원은 "지난 6월 4∼6%에 불과했던 신용카드 연체율(1개월 이상 기준)이 9월 들어선 10%대까지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미국 카드사들의 연체율이 5%대라는 점을 감안할 때 우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금융주 왜 추락하나=금융주 주가 급락의 촉매제는 신용카드 연체율 증가다. 지난해 말 4.36%였던 카드 대출(현금서비스+카드론) 연체율이 지난 7월 말 6.79%까지 늘어났다.

특히 카드 대출 연체율 증가는 단순히 카드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국내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카드사업을 하고 있거나 카드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어 카드 연체율이 증가하면 수익이 그만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국내 카드 대출 잔액 규모는 약 70조원이나 되지만 대부분은 담보·보증 대출이 아닌 신용대출이다.연체율이 늘면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증권은 카드 대출 중 1% 손실이 나면 주당순자산은 0.3∼2.1% 준다고 분석했다.

◇가계 신용 얼마나 부실한가=현재로선 카드 부문의 연체율 증가가 가계신용 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 편이다.

은행들이 가계에 빌려준 돈의 80∼90%가 담보·보증을 확보한 것이고, 은행들이 담보가액의 60% 이내에서 돈을 빌려줬기 때문에 부동산가격이 급락하지 않는 한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 한정태 연구원은 "은행들이 분기별로 연체 관리를 하기 때문에 9월 말에 가면 연체율이 떨어질 것"이라며 "특히 미국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3%대라는 점에서 국내 은행들의 2%대 연체율은 높은 편이 아니다"고 말했다.

국내 가계의 소득 규모에 비해 대출액의 규모가 큰 편이 아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LG투자증권 이준재 연구원은 "현재 국내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율은(대출액/가처분소득)은 1백5%"라며 "이는 미국 등 선진국의 1백10∼1백15%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엇갈리는 금융주 투자 적기=전문가들은 금융주 투자 적기에 대해 엇갈리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미래에셋 한연구원은 "은행들의 주가가 많이 빠져 올해 실적 기준으로 볼 때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익)이 6배까지 떨어졌다"며 "지금이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때"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LG증권 이연구원은 "카드사의 연체율이 떨어지거나 적어도 연체율 증가세 둔화가 나타난 뒤 금융주를 사도 늦지 않다"며 "9월 연체율이 나오는 10월 중순까지 기다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angel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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