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방식 中·베트남보다 파격 東유럽 전면적 체제전환과도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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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의 개혁·개방정책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 과정과 비교하면 유사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개혁·개방의 후발주자로서 중국·베트남·동유럽 각국은 물론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원래 자본주의 체제를 가진 나라들의 경험들까지 참조하면서 압축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북한의 개혁 방향은 중국·베트남의 초기 개혁·개방 때와 비슷하다.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시장경제 시스템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노선이다.

중국은 1978년 농업·공업·과학기술·국방의 4개 현대화와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을 당면과제로 삼으면서도 사회주의 노선, 공산당의 영도 등 4개 기본원칙을 아울러 제시했다. 개혁·개방이 사회주의 포기로 비춰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 방향에 따라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을 동시에 추진했다. 79년 일부 제품에 대한 가격 자유화와 농가책임 경영제 도입, 기업에 대한 국가의 권한 이양은 개혁조치의 대표적이다. 중국이 동남부 연해 4개 지역에 설치한 경제특구는 개방의 대명사가 됐다.

북한이 지난 7월 실시한 물가·임금 인상, 환율 현실화, 개인영농제 부분 도입, 공장·기업소의 자율성 확대와 신의주 특구 지정은 중국의 조치와 흡사하다. 북한이 "이들 조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 안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새로운 경제관리 방식"이라고 선을 그은 것도 개혁 초기의 중국과 비슷하다.

한편 베트남은 79년 신경제정책을 채택, 농산물 계약제와 성과에 따른 임금 지급 등의 조치를 도입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초기 개혁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의 경제제재, 물가 상승, 인프라 낙후 등으로 실패했다.

북한이 최근 대외관계를 개선하고 미국과 대화를 바라는 것은 베트남의 초기 개혁 실패를 참조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들이다. 베트남은 86년 도이모이(쇄신)정책을 통해 시장 경제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경제를 본격적인 성장 궤도로 진입시킨다.

그런데 신의주 특구는 중국의 경제특구나 베트남의 수출가공구보다 훨씬 파격적이다. 특구에 입법·사법·행정권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신의주에 특구를 설치하면서 중국의 경제특구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를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의 사례도 참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동유럽 국가의 전면적인 체제 전환과는 대별된다. 동유럽 국가의 경우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시장경제 체제 전환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폴란드나 헝가리가 대표적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홍익표 연구원은 "북한의 개혁·개방이 노동당과 정부의 관리하에 부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측면에서는 중국과 닮았고, 압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유럽의 체제 전환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오영환 기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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