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전액 장학금 ‘SW 사관학교’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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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만드는 기술은 한국이 최고다. 그러나 휴대전화를 운영하는 플랫폼(아이폰의 IOS, 구글의 안드로이드 등)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의미의 아키텍터(설계자)는 한국에 없다. 시공 능력 최고의 한국 건설사가 짓는 빌딩 설계자가 한국인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학과를 준비 중인 성균관대 신동렬 정보통신학부장의 말이다.

성균관대가 2011학년도부터 소프트웨어학과를 신설한다. 전액 장학금을 지급, 생활비도 보조는 물론 기숙사도 우선 제공하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다음 달 시작되는 수시전형부터 학생을 뽑는다. 성균관대 김윤제 입학처장은 29일 “첫해 정원은 30명으로 정해졌다. 고교 최상위권 학생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에 재능이 있는 창의적 학생도 선발한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창의력 있는 인문계 학생을 선발하는 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원은 향후 1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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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에는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메시지가 있었다. 대학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최근 “삼성전자에 3만 명의 소프트웨어 연구인력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충원할 수 있는 인력은 1만8000명뿐이다. 나머지는 인도 등에서 인력을 수급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고급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인도와 러시아에서 많은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이달 초 삼성전자 최지성 사장이 사내방송에서 “최근 전자산업은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지배하는 방향으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 변화에 신속히 대응해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최근 산업계의 이슈인 ‘아이폰 열풍과 삼성전자의 위기’는 국내 소프트웨어 분야의 빈약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내의 인재들은 소프트웨어 분야를 외면하고 있다. 신동렬 학부장은 “한국 학생들에게 소프트웨어는 4D산업이다. 어렵고(Difficult), 위험하고(Danger), 열악(Dirty)할 뿐만 아니라 꿈도 미래도 없다(Dream X)는 뜻이다. 실제로 서울대·KAIST 등 명문 대학에서조차 컴퓨터공학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산업이 하드웨어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소프트웨어 분야를 홀대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것은 이런 국내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대학은 이번 프로젝트를 ‘소프트웨어 사관학교’로 정했다. 최고의 소프트웨어 엘리트를 키워내겠다는 의미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미국 주립대들이 아이비리그로 빼앗기는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아너 칼리지(Honor College)’를 만들어 많은 투자를 한다”며 “의대 등 일부 인기 학과로 몰리는 학생을 뽑기 위해 우리도 비슷한 전략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정태명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전체 플랜을 짤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의 엘리트뿐이다. 이를 위해 뛰어난 학생을 뽑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는 과 설립을 위해 지난해 KAIST 교수 4명을 한꺼번에 스카우트했다. KAIST에서 성균관대 공대로 여러 교수가 한 번에 이동한 것을 학계에서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학교는 인텔·마이크로소프트·퀄컴 등 세계적 기업의 소프트웨어 전문가 영입도 시도하고 있다. 신 학부장은 “박사 학위가 없어도, 능력만 있다면 교수로 채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강인식·김효은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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