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로 번진 '이기준 해일'] 노 대통령, 공직자 인사시스템 개선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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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관리 인사 시스템이 크게 바뀐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 같은 지시는 9일 청와대 관저에서 이해찬 총리, 청와대 인사추천위원들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나왔다.

노 대통령이 제시한 개선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주요 공직 후보의 재산에 대한 사전 검증 강화와 국회의 인사청문회다. 주요 공직 후보자에게는 미리 재산 문제를 검증하기 위한 동의서와 관련 답변서를 받는 방안도 포함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미국에서는 청문회 대상 고위 공직자 범위가 우리보다 훨씬 넓다고 말해왔다. 공직자 재산도 스스로 밝히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국무위원의 경우 국회 관련 상임위에서 하루 정도 인사청문회를 받는 방안을 검토해보라"로 말했다.

이병완 홍보수석은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면 당정 협의나 국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므로 실무자들의 검토가 있을 것"이라며 "국회 인사 청문이 '동의적 청문'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엔 국무총리.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등에 대해서는 국회 동의를 구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국정원장.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 등 이른바 '빅 4'는 인사청문회를 받기는 하지만 국회의 인준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다. 노 대통령은 '빅 4'의 경우처럼 부총리와 장관에 대해서도 청문회는 실시하되 국회 동의는 생략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무위원에 대한 청문회 방식을 놓고 조만간 국회 차원에서 여야 간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재산 문제 검증을 위한 사전 동의서나 재산 검증 답변서를 사전에 받는 방안은 당장 신임 부총리 임명 과정에서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법 개정과 관계없이 당사자의 동의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정찬용 인사수석은 지난해 9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특파원들과 만나 "장관을 비롯한 고위직을 인사할 때 후보자가 스스로 돈 문제에 대해 먼저 서면으로 설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었다.

◆ 정치권에서 다양한 주문 나와=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의 인사청문회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대해 "대통령께서 생각을 잘 하신 것 같다"면서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인사문제도 체계가 잘 잡히고 이번과 같은 혼선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전여옥 대변인이 전했다.

한편 정치권에선 청와대 인사시스템 개편에 대한 다양한 주문을 내놨다. 청와대 책임론을 주장한 열린우리당 지병문 의원은 "특정인이 장.차관을 추천하는 풍토가 앞으로도 시정되지 않으면 이런 문제점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드러난 만큼 부분 손질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바꾸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권철현 의원은 "원래 청문회법을 도입할 때 국무위원을 포함하려다 안 됐던 것"이라며 "인사청문회법에 국무위원을 포함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굳이 국회에서 국무위원에 대해 동의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은 "상임위에서 한번쯤 국무위원에 대한 검증절차를 거치는 것은 맞다"면서도 "모든 장관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만큼 당장 제도화해 시행하는 것보다는 기왕에 있는 제도를 잘 활용해 해보다가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용호.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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