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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엔 죄송합니다" 직장인 절반,연휴 짧아 귀성 포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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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1면

올해 추석 연휴가 토·일요일과 겹쳐 직장인들이 울상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www.naver.com)가 1만2백66명을 대상으로 추석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고향으로 가지 않겠다는 직장인이 50.9%였다. 추석연휴 앞 뒤에 일요일이 연결돼 나흘 이상 쉬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연휴가 사흘에 불과해 귀향을 아예 포기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렇지만 추석을 고향의 친지들과 보내고픈 마음은 한결 같다. 고향에 가지 않는 대신 해외여행과 자기계발로 재충전하는 직장인들도 많다.

◇그래도 고향이다=부국증권 성남지점 최병한(29)씨는 고향 강릉이 태풍 '루사'로 큰 피해를 봐 추석을 앞두고도 마음이 무겁다. 19일 밤 고교 동창 두명과 함께 자신의 승용차로 강릉에 갈 계획이다.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린 뒤 태풍 때문에 논·밭이 망가진 작은 할아버지집으로 달려갈 작정. 일손이 모자라 쓰레기 더미가 논을 뒤덮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崔씨는 "이번 추석은 실의에 빠진 어른을 돕는 데 힘을 다 쏟을 생각이며, 사흘밖에 도울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마루베니코리아 이현창(34)과장은 지난 5월 8년간의 일본 생활을 뒤로 하고 귀국했다. 李 과장은 지난주 대구행 비행기표를 구하기 위해 부산히 움직였다. 워낙 연휴가 짧아 구하기 어려울 것으로 여겼던 항공권은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얻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항공사 홈페이지를 두드린 결과 다른 사람이 예약 취소한 것을 확보한 것이다.

李 과장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가야 해 귀향이 걱정이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추석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WM팀 강현진(28)씨는 지난해말 결혼 한 후 처음 맞는 추석이라 가슴이 설렌다. 19일 밤 대전행 열차에 몸을 싣는 姜씨는 입석표밖에 구하지 못했다. 22일 밤 서울로 올라오는 표도 입석이다. 그러나 姜씨는 "두시간 내내 서 있어야 하지만 고향에 간다니 마음이 가볍다. 사흘 동안 고된 부엌일에 아내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자 해외로=건물관리업체에서 일하는 김민주(25)씨는 추석 연휴에 쓰지 못한 여름휴가를 붙여 지난 13일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22일까지 열흘 일정으로 프랑스 등 서유럽 5개국을 둘러보고 있다. 날씨도 안 좋고 회사 사정도 있어 여름 휴가를 계속 미룬 것이 오히려 길게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됐다. 金씨는 "대학 시절 유럽여행을 못 갔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추석 연휴와 아껴둔 여름휴가를 과감히 붙였다"고 밝혔다.

한편 여행업계에선 이번 추석연휴가 줄어들어 직장인들이 해외로 나가기 여의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지난해 추석 때 해외 여행 고객수가 6천4백여명이었으나 올해는 절반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그냥 놀 순 없다=플리트 내셔널 은행 권민정(23)씨는 추석 연휴를 이용, 국제재무분석사(CFA)시험에 대비하기로 했다. 미국회계사(AICPA)자격증을 갖고 있는 權씨는 CFA시험의 난이도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추석연휴지만 시험 준비에 매달릴 작정이다.

최근 은행을 다니다 경제신문사로 옮긴 L모(28)씨는 추석 연휴 동안 당직을 서 게 됐다. 회사에서 추석을 보내는게 아쉽지만 스크랩된 좋은 기사를 보며 틈틈이 기사 작성 연습을 할 예정이다. L씨는 "직장을 바꾼 만큼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면서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회사에 적응하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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