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권한 조선시대 윤리책 名著에 포함시킨 건 난센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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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근자에 인터넷 자살 사이트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사람이 제 목숨을 제 손으로 끊는 것보다 흉측한 것은 없으리라. 자살을 권유하거나 자살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절실한 이유를 대어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만약 이 상식에 어긋난 일을 버젓이 가르치는 책이 있다면 어찌할텐가?

현암사에서 오래 전에 나온 『한국의 명저』란 책에 『오륜행실도』가 명저의 하나로 소개돼 있다. 세종 때 엮어진 『삼강행실도』와 중종 때 김안국이 이륜(장유유서·붕우유신)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이륜행실도』를 정조 때에 합쳐서 펴낸 책이다. 한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륜행실도』의 원형인 『삼강행실도』다. 『오륜행실도』가 명저라면, 당연히 그 원형인 『삼강행실도』도 명저일 터이다.

삼강은 알다시피 신하의 임금에 대한, 자식의 어버이에 대한(주로 아버지), 아내의 남편에 대한 윤리, 곧 충·효·열을 말한다. 이 책은 세종 10년에 김화란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세종은 이 살부사건에 충격을 받아 백성을 교화할 윤리서의 제작을 명했던 것이다. 곧 중국과 우리나라의 충신·효자·열녀의 사례가 수집됐다. 4년 뒤 각각 1백 10건의 사례가 수집됐던 바, 한문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그림까지 붙여 간행했다. 조선조는 백성들에게 책을 만들어주는 데 매우 인색했으나, 이 책만은 조선조 말까지 국문으로까지 번역해 여러 형태로 전국 각지에서 인쇄, 보급했다.

이 책은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엄숙한 책이지만, 정작 내용을 보면 참혹하기 이를데 없다. 효자편에 실린 효자들은 아버지를 위해 한 겨울에 앵두를 찾아 혹한 속을 헤매는가 하면, 손가락을 끊고(斷指), 넓적다리 살을 칼로 서슴없이 베어내고 있다(割股). 나는 부엌에서 무딘 칼로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고 피를 흘리면서 고통에 떠는 자식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곽거란 사람은 철없는 어린 자식이 어머니의 음식을 먹는다고 땅에 묻어 죽이려 했다. 비합리성과 잔혹성으로 점철된 것이 『삼강행실도』의 내용인 것이다.

효자편은 열녀편에 비하면 그래도 약과다. 열녀편의 열녀 1백10명 중에서 자살이거나 타살이거나 죽음으로 열녀가 된 사람은 80명이다. 죽지 않은 열녀 30명은 왕비 같은 고귀한 신분이다. 효자편에서 죽음으로 효자가 된 남성은 겨우 5명이다. 엄청난 차이가 아닌가? 실례를 보자. 중국의 취가란 여성은 반란군이 남편을 잡아 삶아먹으려 하자, 자신이 아마도 더 맛이 있을 것이라면서 대신 삶겨 반란군의 배를 채웠다. 장천석이란 사람은 첩 염씨와 설씨에게 자신이 죽으면 너희들은 어떻게 할텐가 라고 묻는다. 두 사람은 죽음으로 보답하겠노라고 대답했다. 어느날 남편이 병들어 죽을 것 같자, 두 사람은 정말 미리 목숨을 끊었다. 남편은 뜻밖에도 병이 나아 살아났다. 애매한 목숨 둘만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과문한 탓인지 아내를 대신해 죽은 남편의 이야기는 여태까지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했다. 불공평하다 못해 씁쓸하기조차 하다.

조선시대 열녀담 중에서 겁탈을 당해 저항하다가 죽음을 택한 것은 그래로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어린 자식이 있고, 주위에서 만류하는 데도 불구하고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조선시대는 열녀는 오로지 죽음·자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열녀 이야기가 숱하게 전한다. 학생들과 함께 문화유적을 답사하면 열녀각이 없는 지방이 없다. 열녀는 조선시대에 흔한 바는 아니지만, 결코 드문 존재도 아니었다. 한데 타고날 때부터 죽어야만 '열(烈)'을 이룬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이 있었을까? 열녀가 되기는 오로지 후천적인 학습에 의한 것이고, 그 학습의 교과서가 바로 『삼강행실도』였던 것이다.

옛 책이라 해서 과연 다 귀하고 소중할까? 나라에서 윤리도덕을 구실로 삼아 여성에게 자살을 권하고 자살의 방법을 가르치는 책이 무슨 명저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지금이라고 어디 그런 책이 없을까? 똑똑히 가려내어 속지 않아야 할 것이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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