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드라마엔 골프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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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앙꼬 없는 찐빵, 단무지 없는 김밥…. 흔히 어떤 현상 속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졌을 때 웃자고 하는 비유다. SBS 드라마 '라이벌'(사진)은 이런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라이벌'이 지난 봄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골프를 소재로 했다는 점이다. 골프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감지하고 있던 방송사측이 "국내에서 최초로 만드는 골프 드라마"라고 광고했던 것도 사실이다.

많은 시청자가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평소 접하기 힘든 골퍼(Golfer·골프 치는 사람, 선수)의 치열한 삶 등 골프라는 세계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드라마가 횟수를 거듭하면서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이복자매 사이인 윤다인(소유진 분)과 정채연(김민정 분)의 골프 대결은 꼬리를 감추고, 남자를 사이에 둔 사랑 싸움이 드라마를 이끌어가고 있다. 처음엔 골프 장면도 간간이 나오는가 싶더니 점차 그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 8일 방송분에서는 아예 골프와 관련된 장면이 전혀 없었다.

극중 골퍼의 인물 설정도 비현실적이다. 채연은 국내 최고의 골퍼다. 그런데도 연습 한번 안하고 매일 다인을 해코지하는 일을 꾸미느라 바쁘다.

당연히 드라마의 사실성이 떨어진다. 극의 흐름도 애초 의도에서 변질됐다. 당초 '티칭 프로(Teaching Pro·골프 전문강사)'인 이근희와 장성원은 또 다른 '라이벌' 관계로 설정됐으나 실제로 이들의 얘기는 주인공의 사랑싸움에 묻혀버렸다.

이에 대해 성도준 PD는 "점점 멜로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극중 흐름이 산만해질 것 같아 자제했다"고 말했다. 골프장 대여가 쉽지 않은 데다 촬영 일정도 빠듯해 골프장 장면을 찍기 힘든 현실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골프 드라마는 어디로 갔을까?"란 의문은 남는다. 설마 드라마가 끝나면 이어지는 골프 의류업체 광고를 대신 보란 얘기는 아닐텐데….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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