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실장의 '복안'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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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의 심기가 불편하다. 총리감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다. 한 시사주간지 탓이다. 이 주간지 최근호는 표지에 '공공의 적 박지원'이라는 큼지막한 타이틀과 함께 얼굴 사진을 실었다. 그가 여권 내에서조차 비난받는 상황을 패러디한 것인데 朴실장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미 변호사비로 3천만원을 지급했다. 새삼스런 내용이 아님에도 이토록 발끈하는 것은 정권 막바지에 봇물 터지듯 쏟아질지 모를 비판기사를 견제하기 위한 경고로 이해된다.

그렇다고 朴실장 관련 기사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실인심한 DJ정부 실세(實勢)라는 이유만으로도 언론과 정치권의 표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현정권과 주요 언론사 간의 갈등 한복판에 자리했던 전력도 한 요인일 터다. 그러나 그와 언론의 관계가 이게 전부는 아니다. 그를 끔찍이 싫어하는 적대자가 많으나 동조자도 상당하다. 아니 '박지원 장학생'으로 불리는 일단의 그룹은 그를 '대(代)통령' 위치까지 끌어 올리는 밑거름이었고 지금은 DJ정부를 받쳐주는 핵심이다.

사실 朴실장처럼 언론을 꿰고 있는 이는 드물다. 한 주에 열차례 넘게 언론 관계자와 회식을 갖는 등 피아(彼我)를 안가리고 10여년을 지내왔으니 그럴 법은 하다.비판적 인사에게도 열심히 다가가 홍보를 하는 그의 끈기와 바지런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욕을 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그에 대한 DJ의 절대적 신임도 이런 부분과 무관치 않다. '입 속의 혀'처럼 의도하는 바를 적시에 챙기는 것 못지 않게, 선전선동의 대가로서 악역을 마다하지 않으니 어려운 처지의 DJ에겐 요긴한 존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정 일각을 제외한 여야 정치권 모두로부터 공격받는 朴실장이지만 힘이 붙고, 의원들이 따르고,'큰 구상'도 하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구설에 오르게 마련인 朴실장은 정치문제, 특히 대선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한다. 하지만 마냥 뒷짐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년 2월 이후를 얘기하는 그에게선 뭔가의 자신감이 언뜻 묻어난다. 단순한 DJ 임기 '마무리'가 아님을 함축하고 있다. 그는 민심이반으로 여권 내에 패색이 만연했던 올해 1월 정책특보로 청와대에 복귀할 때 "주위에서 '왜 이 마당에 (청와대로)들어가느냐'고 하더라"며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정권 끝물에 몸조심이나 할 것이지'라는 조언을 '뭘 모르면서'라는 투로 뱉은 것이다. '복안(腹案)'이 있다는 표정이었고 비서실장으로 옮긴 지금에도 여전하다. 그 복안이 병풍을 포함한 다른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다만 호의적 언론의 지원사격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음은 감지된다.

한나라당이 병풍과 관련해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고, 방송사에 편파보도 시정요구 공문을 발송한 해프닝도 朴실장 배후설에 기인한다. 朴실장을 '위험인물 1호'로 파악하는 한나라당은 이제 그를 정면으로 겨냥하면서 대선 후 최우선 출국금지 대상자로 꼽고 있다. 정치 후각(嗅覺)이 발달한 朴실장이 전후 정국상황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그는 여유작작하다.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다는 증좌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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