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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가을에는 스웨터를 자주 걸치는 여자(女子), 추운 날엔 팬티스타킹을 신는 여자(女子), 화가 나면 머리칼을 뎅강 자르는 여자(女子), 팬티만은 백화점에서 사고 싶다는 여자(女子), 쇼핑을 하면 그냥 행복하다는 여자(女子),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다는 여자(女子), 더러 멍청해지는 여자(女子), 그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그러나 가끔은 한잎 나뭇잎처럼 위험한 가지 끝에 붙어 서서 햇볕을 받는 여자(女子).

-오규원(1941~ ) '한 잎의 여자'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가벼운 여자 같지만 그렇지 않다.'더러 멍청해 지고' '위험한 가지 끝에 서서 햇볕을 받는 여자'다. 여기 이 여자의 중량 회복이 있다. 이 시의 앞 연은 '영혼에도 가끔 브래지어를 하는 여자'로 끝나고 있다. 웃음이 나오지만 소중스러움이 있다. 한없는 허세로 젖고 또 젖어 곰팡이가 나버린 여름 맨살은 이제 갔다. 햇볕에 '나'를 내어 말리자. 우리들의 영혼을 간수하자.

정진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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