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스웨터를 자주 걸치는 여자(女子), 추운 날엔 팬티스타킹을 신는 여자(女子), 화가 나면 머리칼을 뎅강 자르는 여자(女子), 팬티만은 백화점에서 사고 싶다는 여자(女子), 쇼핑을 하면 그냥 행복하다는 여자(女子),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다는 여자(女子), 더러 멍청해지는 여자(女子), 그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그러나 가끔은 한잎 나뭇잎처럼 위험한 가지 끝에 붙어 서서 햇볕을 받는 여자(女子).
-오규원(1941~ ) '한 잎의 여자'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가벼운 여자 같지만 그렇지 않다.'더러 멍청해 지고' '위험한 가지 끝에 서서 햇볕을 받는 여자'다. 여기 이 여자의 중량 회복이 있다. 이 시의 앞 연은 '영혼에도 가끔 브래지어를 하는 여자'로 끝나고 있다. 웃음이 나오지만 소중스러움이 있다. 한없는 허세로 젖고 또 젖어 곰팡이가 나버린 여름 맨살은 이제 갔다. 햇볕에 '나'를 내어 말리자. 우리들의 영혼을 간수하자.
정진규<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