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쪽방촌 가서 기업책임 통감 … 강신호 전경련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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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중에 전경련 회장단과 함께 '쪽방촌'에 또 갈 거야."

지난해 말 서울 영등포동의 쪽방촌을 두번 방문했던 강신호(78.사진)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내 평생 이렇게 허름한 곳은 처음 보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6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한 그는 "국민소득이 1만달러가 넘는데도 경제발전 혜택을 전혀 못 받는 사람들이 있더라"며 "노동계 대표는 물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같이 방문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강 회장은 또 "그 동네 쪽방촌 절반이 곧 헐린다는데 어디로들 갈지 모르겠다"며 "전경련과 기업들이 힘을 보태 이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건물을 짓고 싶다"고 했다. 강 회장은 처음으로 쪽방촌에 들렀다가 하도 가슴이 아파 쪽방촌 안의 성요셉병원에 찾아가 의료기기와 의약품 1억원어치를 기증했다고 한다. 성요셉병원은 쪽방촌 주민과 노숙자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곳이다.

"쪽방이란 게 두 사람이 못 누울 정도로 비좁았다. 방은 차갑고 2층 쪽방에 올라가는 계단은 거의 수직일 정도로 가팔랐다. 그렇게 살아도 인심은 넉넉하더라. 한 할머니가 음료수 한병을 줄 때 어찌나 가슴이 뭉클하던지 그 음료수는 마시지 않고 보관하고 있지."

강 회장은 또 다른 일화도 소개했다. 첫 방문 때 성요셉병원의 자원봉사 아주머니가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예전엔 한 기업이 난방용 기름을 대줬는데 외환위기 후에 지원이 끊겨 겨울이면 환자들이 떨고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침 방문단의 일원인 SK의 한 임원이 바로 그룹경영진에 보고해 연료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이어 "인근 교회 마당에 노숙자들이 천막을 쳐놓고 바닥엔 스티로폼을 깔고 자고 있고, 무료로 제공되는 밥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더라"면서 "가족 단위 노숙자와 여성 노숙자가 많아졌고, 노숙자 수도 외환위기 때보다 더 늘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게 아니다"라며 "경영권을 반드시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실력있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더욱 좋은 기업으로 키우는 것도 기업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동아제약 회장인 그는 지난해 차남 강문석(44)동아제약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한 것이다. 그는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 회장도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강 회장의 임기는 다음달까지다. 2월 23일 총회에서 새 전경련 회장이 선출된다. 후임 회장 선임과 관련해 강 회장은 "재계의 단합을 위해 힘 있는 사람이 나서야 하기 때문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적격"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고사해 추대가 힘들 경우 연임할 수도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총회에서 회원들이 뜻을 모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글=김영욱.권혁주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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