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끝에 절절한 나라 잃은 한, 그리고 고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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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살아서는 무릎을 맞댈 수 없었던 인물들이 죽은 뒤 글씨로 모였다.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남긴 송곳 같은 글씨 맞은쪽에 이토 히로부미(1841~1909)의 맥없이 흐무러진 필적이 붙어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98)은 당대에 난을 잘 치기로 이름났다. 난이 군집을 이룬 이 ‘총란도(叢蘭圖)’에는 ‘서로 뭉쳐 모든 꽃의 종주가 될 수 있으리’란 화제가 붙어있다. 비단에 먹, 1886.

김구(1876~1949)의 ‘헌신조국(獻身祖國)’ 옆에 이승만(1975~1965) 전 대통령의 ‘민위방본(民爲邦本)’이 나란하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 했지만, 이를 조금 더 넓혀보면 글씨는 그 인물이 생존한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다.

이토 히로부미 조선통감부 통감이 한·일 강제병합을 신선들 놀음이자 양국의 화기애애한 일로 쓴 한쪽에 친일파인 김윤식·조중응·박제순이 그 내용을 찬양한 글로 화답한 ‘칠언시’, 종이에 먹, 1908.

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막한 ‘붓 길, 역사의 길’은 서예의 사회사적 의미를 묻는 한·일강제병합 100주년 특별전. 나라가 망하는 시절에 역사적 사건 깊숙이 관여했던 인물들의 필적으로 망국의 실상을 돌아본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와 지키려는 이가 갈등한 20세기 초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듯 전시는 대척점을 이룬 다섯 쌍의 조합으로 이뤄졌다. 쇄국과 개항, 개화와 척사, 매국과 순절, 친일과 항일, 남북 공동정부수립과 남한 단독정부수립이다. 조형성과 메시지가 한 몸을 이룬 서예에 시대상과 인물상이 거울처럼 비친다.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된 이토 히로부미의 ‘칠언시’가 대표 예다.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정미 칠조약’으로 기고만장한 이토는 한·일 강제병합의 앞잡이들을 ‘신선’이라 칭하며 ‘양국에 화기가 오랫동안 맴도리라’고 우쭐댄다. 더 가관인 건 이 시 한 쪽에 오그라든 글씨로 맞장구를 친 이들이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박제순과 매국노 조중응이라는 것이다. 덩달아 ‘신선’을 들먹이는 그들 글엔 이미 조선은 없다.

이토의 또 다른 ‘칠언시’에는 개화파였던 박영효의 시도 붙어있다. 나라의 목숨이 흔들릴 때 변혁과 변절 사이에 섰던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주는 증거다.

친일파 이완용(1858~1926)의 ‘칠언절구’는 과연 글씨 쓰기가 수양의 도구일까, 되돌아보게 만든다. ‘집집마다 일본 천황을 모시는 일이 천추의 사업이니 바로 공명을 이룰 때가 지금이다’는 글귀를 보면 나라 망하는 소리가 붓 끝에 적나라하다. 아무리 글씨가 좋아도 내용이 이렇다면 그것이 명필일까. 손바닥만한 명함에 애끓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민영환(1861~1905)의 글씨는 잉크 자국이 핏자국처럼 보일 만큼 맺고 끊어 쓴 서체가 절절하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는 “망국→분단→통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를 글씨로 더듬으며 오늘의 우리를 비추어보자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8월 31일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02-580-1660.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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