治水사업 투자 대폭 늘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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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8월 초 경남지역 홍수피해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15호 태풍 루사는 우리 국토 곳곳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홍수의 대형화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올 들어 독일·체코 등 유럽 국가와 중국에서도 전대미문의 대홍수가 발생했다. 이는 지구 온난화 등의 기후변화가 홍수와 가뭄을 대형화하고 있다는 최근 학설을 실감케 한다.

우리나라의 치수사업은 다목적 댐 건설과 하천 제방 축조를 두 축으로 추진돼 왔다. 1970~80년대 활발했던 대규모 다목적 댐의 건설은 90년대 들어 사회·환경적 이유와 댐 후보지 고갈로 한계에 도달했다. 제방 축조 등 하천정비 사업은 70년대 초부터 추진돼 왔지만, 이번 홍수 때 보면 제방이 터지고 범람해 대형 홍수 피해로 이어진 곳이 많았다. 이제 정부의 치수방재 정책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치수방재 사업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82년부터 올해까지 하천정비 사업에 7조5천여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96년 임진강 대홍수 전에는 연간 투자액이 1천억원에도 못미쳤다. 올해 사회간접자본(SOC)투자가 국민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치수사업은 0.2%로 도로(1.52%)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2001년 말 현재 하천 정비율은 77%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홍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SOC투자의 70% 정도를 도로·철도·항만 등 물류 분야에 쓰던 정책을 바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홍수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둘째, 기존 치수시설물의 홍수방어 능력을 재평가하고 대폭 보강해야 한다. 8월 초순의 낙동강 홍수는 집중폭우로 강물이 범람한 것이 아니라 열흘 이상 계속된 홍수로 제방에 누수가 생겨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유지·관리하지 않고 있는 노후제방이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기존 하천제방의 구조적 안전성에 대한 정밀 진단과 보강 공사는 필수적이다.

태풍 루사 때 강릉의 하루 강우량은 8백70㎜, 시간당 강우량은 1백㎜를 넘었다. 90년대 이후의 단기 강우량은 종종 상상을 초월한다. 이를 감안, 기존의 하천제방, 소형댐, 도시 내 배수시설 등의 안전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보수·보강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셋째, 하천유역 내의 모든 치수 방재수단을 연계하는 유역 종합 치수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라 하천 치수를 추진해야 한다. 홍수조절용 댐이라든지 홍수조절지·사방댐·하천정비 및 준설 등 다양한 구조물적 수단을 연계해야 한다. 홍수 경보시설을 확충하고 홍수 보험제도를 도입하는 등 종합적인 수단을 강구해 하천유역의 치수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넷째, 행정조직을 보강하고 홍수 피해를 줄이는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도 뒤따라야 한다. 치수방재 사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 건설교통부 수자원국, 5개 지방 국토관리청 하천국, 행정자치부의 방재관실 등 현재의 조직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홍수재해 경감 기술의 연구개발을 위해 국책연구소 주도의 연구나 국가 연구사업의 추진이 필요하지만 현재 조직적인 연구투자가 전혀 없다. 과학기술부의 프론티어-21사업 등의 형태로 국가주도 연구사업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치수는 치국의 근본이다. 경제발전과 사회·환경 개선을 목표로 한 지난 30여년 간의 정책은 국민의 기본적인 생존권 보장을 너무 소홀히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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