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직원 인기투표로 국장을 뽑겠다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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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공정거래위원회가 파격적인 인사 구상을 선보였다. 공정위의 핵심국장 자리를 내부에서 공모하고, 인선 과정에 직원들의 '적격자 투표'결과를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중앙 정부부처의 보직 국장은 직업공무원의 꽃이다. 보통 각 부처의 주요한 정책결정은 국장 선에서 이뤄진다. 그만큼 고도의 전문성과 리더십이 동시에 요구되는 자리이다.

공정위가 이런 핵심 보직 국장을 내부 공모로 뽑기로 한 것은 기존의 기수 서열에 따른 자리배정 방식을 탈피하고자 한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다. 서열에 따른 순차적인 승진과 기계적인 보직 배치는 그간 공무원 인사의 큰 병폐 중 하나로 지적돼 왔다. 햇수만 차면 누구나 국장이 되는 인사관행이 공무원 사회에 무사안일 분위기와 조직 이기주의를 부르는 원천이 돼 왔다.

이런 점에서 내부 공모는 경쟁을 통해 능력있는 인재를 발탁해 타성에 젖은 조직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공무원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공모방식은 인사의 투명성을 높여, 연고에 따른 파행 인사나 '줄대기 악습'을 불식하는 데도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투명성을 높인다고 해서 직원들에게 투표를 시켜 그 결과를 인선과정에 반영하겠다는 발상은 득보다 폐해가 더 클 것이다. 인사철마다 직원들이 자신의 상사가 될 사람을 투표로 가린다면 그 조직이 어떻게 되겠는가. 부하직원의 인기를 얻기 위해 경쟁을 하고 그 부작용은 일 중심이 아니라 인기 중심의 일처리가 될 게 뻔하다. 조직의 기강은 무너질 것이다. 이미 중앙부처 간부들은 다면평가를 통해 상하급자로부터 간부로서의 자질을 평가받고 있다. 다면평가만으로도 직원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간부가 많은 판에 투표까지 하게 되면 공직사회에 또 다른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만연할 우려가 크다.

정부 부처는 회원들의 투표로 대표를 뽑는 친목단체나 임의단체가 아니다. 중앙부처 국장은 조직원의 인기에 좌우되는 선출직이 아니라, 능력과 소신을 가지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복(公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