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방울방울… 우주 담기 30년:74번째 개인전화가김창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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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비 그치고 햇살 난 뒤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들을 보라. 크고 작은 놈,둥근 놈, 길쭉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리려는 놈 등 수천 수만의 물방울들이 각기 하나의 눈을 가지고 있다. 창을 통해 들어온 세상이 다시 물방울의 투명한 표면장력에 팽팽히 갇혀 있다. 그 앞에서 우리의 상상력은 무한대로 열린다.

김창열(73)화백의 물방울은 바로 이런 창을 바라보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아니 김화백의 물방울 그림이 있어 우리는 물방울, 물 앞에서 좀 더 깊은 생각에 잠기며, 아주 생각 자체를 놓아버리며 우주와 교감할 수 있다.

30여년간 오로지 물방울만 그려 세계적 화가가 된 김화백이 8월 29일부터 오는 11일까지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02-544-8481)에서 '김창열전'을 열고 있다. 왕성한 창작욕을 보여온 김화백은 이번 74번째 개인전에서 '회귀'연작 등 미발표 신작 20여점을 선보인다.

김화백은 또 세계 최고 화가들의 초대전을 여는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국립 죄 드 폼 미술관에서 2004년 1월부터 전시회를 갖는다. 이 일정 때문에 더 바빠진 김화백을 지난달 28일 서울 평창동 자택으로 찾아갔다.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김화백은 해마다 자녀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서울로 데리고 와 여름을 나고 간다.

"달마는 면벽(面壁) 9년만에 득도(得道)했다는데 나는 물방울 구도(求道) 30여년에도 도무지 이렇습니다. 깨달아버리면 삶도, 앞으로의 역정도 재미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 미몽인 채로 더욱 열심히 그릴 수밖에요.이번 전시회와 죄 드 폼 전시회 때는 이런 나의 역정을 그대로 보여주려 합니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겼음에도 김화백은 하루 여섯 시간씩 붓을 들고 캔버스와 마주한다. 30여년 전 처음의 물방울과 지금의 물방울을 한결같이 그리고 있다.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물방울이 아니라 그 물방울을 드러내는 캔버스다. 아무 색채도 없는 마포, 혹은 단색의 바탕에서 나무·흙·신문지로 갔다가 이내 천자문(千字文)의 서체 혹은 활자로 캔버스가 바뀌고 있다.

그러다 이번에는 컴컴한 캔버스에 물방울이 올려진다.어느 바탕에서든 투명하게 빛나는 물방울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그 물방울은 우주의 가장 작은 실체로서의 살아 있음, 그 빛나는 즉물적 감동에서 점차 화가가 보고 있고 보여주고 싶은 깊숙한 우주가 되고 있다.

"파리 가난한 아틀리에에서의 어느날이었습니다. 밤새도록 그린 그림이 또 마음에 안 들어 유화 색채를 떼어내 재활용하기 위해 캔버스 뒤에 뿌려놓은 물이 방울져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존재의 충일감에 온몸을 떨며 물방울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살아 있음의, 화가로서의 환희로 만난 물방울을 처음 작품으로 내놓은 곳은 1972년 살롱 드 메. 서울대 미대 수학 후 김씨는 66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하다 69년부터 파리에 정착했다. 물방울을 만나기 전 김화백은 찢어진 틈바구니를 흘러내리는 검붉은 액체 따위의 추상화를 통해 6·25의 상흔 등을 전하려 했다. 그러다 그 피의 흔적이 정화된 맑은 물방울을 만나게 된 것이다.

물방울이라는 구체적 물질을 통해 사유하는 삶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김화백은 20세기 중반 현대미술을 풍미하던 앵포르멜(비구상)의 서구 콤플렉스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물방울의 투명성을 얼마나 강조해 그 물질적 형상을 자연보다 더 구체화하고 거기서 우주를 사유케 하느냐가 그의 필생의 작업이 됐다.

흰 마대를 그대로 이용한 물방울들은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물방울 자체의 이미지일 뿐이다. 바탕도, 물방울도 서로 아무 말 건넬 수 없는 순수 허무의 공간을 바라보는 우리는 외롭다. 고독도 허무도 욕심이니 버리라며 순수 물질로서의 물방울들만,우리들만 의지처 없이 던져놓는다. 외로움 때문인가. 80년대 들어 김화백은 캔버스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붓자국이든지, 색칠한 바탕이든지, 아니면 신문이나 나무결 자체를 바탕으로 물방울을 올려놓으면서.

그러다 90년대 들어 선보이고 있는 '회귀'시리즈에서는 한자의 천자문을 바탕 삼아 물방울을 그리고 있다.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되는 천자문의 의미, 우주의 삼라만상을 둥그런 물방울에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물방울은 그 즉물적 아름다움에 보상되는 고독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종교적·우주적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다 그는 최근 어둡고 두터운 색감의 바탕에 다시 물방울의 실재감만 돋보이게 하면서 우리를 심연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는 위대한 화가는 많았지만 영혼을 건드리는 화가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영혼을 건드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리려 오늘도 물방울과 놀며 씨름하고 있습니다. 내 그림에서 각자 볼 수 있는 것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중학생은 중학생 만큼만, 스님들은 또 그 분들이 찾는 것만큼만 내 물방울에서 보고 갔으면 합니다."

물방울로 다 표현해내고 있어서 그런지 김화백은 말이 드물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 제각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작품이니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직접 보아야 한다. 1백여호의 거대한 캔버스들을 채우고 있는, 아니 화랑 가득히 매달린 물방울들을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보라. 그리고 각자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영롱한 생각들을 만나시라. 우리 자신들도 흘러 저리 영롱히 맺혔다 다시 사라질 저 물방울이고 우주임을.

글=이경철 문화전문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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