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해 이 자리 왔는데 이 정도야…’ 보상심리 작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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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성희롱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왼쪽에서 셋째)이 2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 의원은 이날 “성적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정치생명을 걸고 사실을 끝까지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이 성희롱 사실이 있었다는 증언을 잇따라 했다. [뉴시스]


성희롱 발언 파문의 당사자인 강용석(41) 의원은 국회의원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변호사로, 사회가 인정하는 강자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으로는 성희롱 같은 건 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다. 지켜보는 눈이 한둘이 아니라는 생각만 해도 행동이 조심스러워질 것 같다. 그런데도 성희롱을 했다는 혐의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강자가 성희롱을 하는 심리는 무엇인가.

첫째는 시각 차이다. 가해자로서 당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다. 자신은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했는데 상대편이 지나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당신이 날 희롱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할 때 발뺌을 할 수 있는 것도 진실로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철저히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도 이런 시각차가 반영돼 나온 얘기다.

강 의원은 이번 사건을 처음 보도한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속으로는 ‘아니, 뭐 내가 큰 잘못이라도 했나’ 또는 ‘뭐, 이렇게까지’ 하는 억울함과 울분을 그가 느꼈는지 모른다.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 이상하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서로 다른 시각과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보상심리’ 같은 것이 작용한다. 강자의 성희롱 심리엔 자신이 고생해 이만한 위치까지 왔는데 이 정도쯤이야 하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경향이 있다. 지난 2월 섹스 스캔들을 반성하는 기자회견에서 타이거 우즈는 “열심히 살았으니 유혹을 즐겨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즈의 이 발언은 강자의 보상심리를 잘 보여 준다.
강자의 보상심리는 자리가 높아질수록, 자신이 고생을 많이 했을수록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힘, 영향력에 대한 믿음이 있다.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오는 데 기울였던 노력에 대해 보상받기를 원하는 심리도 있다.

강 의원은 어떤가. 어려운 유년 시절을 딛고 경기고→서울대 법대→하버드대(법학 석사)를 거쳤다. 자수성가형으로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자수성가형 엘리트는 의지도 굳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실수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크다. 자기 능력으로만 성공한 사람들이기에 성취에 대한 보상을 더 많이 얻으려 한다. 만일 공적으로 높은 지위나 역할을 맡는다면, 공인으로서 역할이나 책임의식보다 개인의 욕망을 충족하고 편익을 얻는 기회로 삼고 싶은 유혹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 자신의 위치에 대해 특별히 경계하거나 성찰하지 않으면 그쪽으로 흐를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런 심리를 고려할 때, 대중이 일반적으로 사적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이 또 공적 영역에서 성공할 것으로 막연히 기대한다면 위험한 착각이 된다.

최연희 의원, 우근민 지사의 경우
2006년 6월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던 최연희 의원 사건도 강자의 성희롱 사례로 거론된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동아일보 기자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여기에서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직후 최 의원 측은 취중 실수라고 주장했다. 해당 기자를 음식점 여주인인 줄 착각했다는 것이다. 이런 해명은 또다시 한국음식업중앙회의 반발 항의 성명을 유발시켰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음식점 여주인을 끌어들였다가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 역시 시선의 차이다. 음식점 여주인에게는 성희롱을 해도 된다는 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강용석 의원도 아나운서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아나운서협회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고위 공직자에 의한 성추행 사건도 있었다. 2002년 2월 당시 우근민 제주지사가 여성단체의 한 임원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추문에 휩싸였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우 지사는 해당 여성단체 임원에 대해 “친근감의 표시로 어깨에 가볍게 손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우 지사 측은 사건 자체를 ‘인간적인 실수’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지켜보던 국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 의원도 최 의원과 같이 율사 출신 국회의원이다. 그는 처음엔 성희롱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전략을 택했다. 강 의원은 학생들이 자기 편일 것으로 오판한 듯하다. 그래서 언론 보도를 부인하고 나섰다. 성희롱 피해 학생으로부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뒤엔 부정의 강도가 더욱 세졌다. 최 의원은 일정한 사과를 했지만 강 의원은 그런 것도 없었다. 직업적으로 법조인은 어떤 혐의를 받을 때 순순히 시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법률의 정의와 도덕의 정의는 다르다는 인식을 일부 법조인은 갖고 있다. 시간을 끌며 상황의 변화를 기다리고 끝까지 가면 반전이 있을 수 있다는 심리가 이런 인식의 기저에 깔려 있다. 상당수 법조인은 ‘100% 확실해야 유죄’라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이 ‘51%만 돼도 유죄’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법률적으로 유죄가 아니라는 것만 입증하면 된다는 사고방식도 이런 데서 생긴다. 예컨대 부산의 스폰서 검사 파문도 100% 입증이 어려웠기에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법조인인 강 의원도 그런 상황에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세금을 쓰는 국회의원에겐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도덕의 정의가 적용된다는 점을 강 의원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적 강자에게 국민은 왜 엄격할까
국민이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의 성희롱을 엄격하게 대하는 심리는 뭘까. 일반인 가운데도 유사한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이 많지만 국민은 강자의 성희롱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그들은 우리를 대표하고, 또 그들의 삶이나 생활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들의 활동이 우리 국민의 세금에 의해 지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인으로서 책무를 요구받는 것이다. 공인으로 대우하는 것을 누리는 한에서는 그렇다. 이게 강 의원 성희롱 사건의 핵심이자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는 이유다.

이윤성 한나라당 의원은 강 의원 성희롱 발언 파문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는 건 다 통한다’는 국회의원의 권위의식에서 비롯한다고 비판했다. 국회의원이 권위를 가지고 나름 권위의식을 발휘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부여된 일이 아닌 일반인들과 유사한 일을 할 때면,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알 수 없는 분노의 대상이 된다. 성희롱은 아니지만 국회의원이 스스로 ‘잘하는 것은 폭탄주 마는 것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과거와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과거에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심한 성추행이나 성희롱 행동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암묵적으로 그들의 일탈행위를 방조하거나 그들의 권력이 무서워 그냥 넘어갔었다. ‘잘난 그들’이라 봤기에 예외처럼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세상과 국민이 변했다. 이 변화는 소위 말하는 고위 공직자, 이 사회에서 잘나가고 괜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인식의 변화다. 이 사회에서 최고의 학벌과 비교적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은 시정잡배와 다른 행동과 이야기를 하기를 기대한다. 이런 기대가 무너질 때 대중은 분개한다.

과거 국민은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바로 그들의 능력에 의해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런 자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처럼 그들의 특권도 인정했다. 오늘날 더 이상 고위 공직자들의 위치와 역할이 그들 자신의 능력만으로 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 사회가 점차 투명해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권력 중심의 사람들에 의해 회전문 인사, 또는 그들끼리의 리그와 같은 높은 자리 독식하기 사례들이 자연스럽게 알려졌기 때문일까. 분명 자리를 차지한 자들의 특별한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가 됐다. 누가 그 자리에 앉든, 개인이 아닌 시스템으로 일이 된다고 믿는다. 또는 현재 자리를 차지한 고위 공직자들이 그렇게 개인 능력이 부각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낸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남는 것은 고위 공직자의 위치나 역할에 따른 의무와 분명한 자기 처신에 대한 요구다. 대중은 이들이 자신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국민은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이라면 분명 이들이 취해야 하는 행동의 기본 준칙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 준칙이 무엇인가’의 문제는 고위 공직의 위치를 차지한 사람들이 배워야 할 것이다. 강 의원 사건은 고위 공무원들의 위치에 있는 그들이 자신에게 맞는 행동 준칙을 제대로 학습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할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는 자식을 엄히 가르치고 싶은 부모의 심정으로 대하게 된다. 조선시대 과거에 의해 공직에 나섰던 선비들은 유교 학습에 따라 자신을 관리하고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고위 공직자를 선발하는 시험이 마치 기능인 선발 방식과 유사하게 되면서 개인에 의한 절제와 신독(愼獨)의 정신은 사라졌다.

음담패설 즐기는 사회가 문제
음담패설이 난무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 술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쏟아지는 음담패설은 우리의 눈과 귀를 마비시킨다. 그런 이야기 속에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런 분위기에 젖은 사람이 공적인 영역으로 이동하면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공적인 영역의 사람들에게 스스로 품격을 높여야 한다는 점도 교육돼야 한다. 공인의 책무와 절제가 부담스럽다면 빨리 그 자리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세상 필부의 삶은 비록 번듯하지도 않고 대우도 잘 받지 못하지만,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그래도 자유롭게 살 수 있다. 공적인 강자들은 그에 걸맞은 엄격한 품격을 유지하든가, 강자의 명예를 반납하든가 해야 한다.

황상민 교수(연세대 심리학 교수)swhang@yonsei.ac.kr 중앙SUNDAY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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