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객을 절대 손해 보게 하지 말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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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호 30면

Q.존경 받는 글로벌 기업의 마지막 다섯 번째 조건으로 사회적 책임의 이행을 꼽으셨는데, 기업이 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나요?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사회적 책임 이행의 효과는 무엇입니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과 지속가능한 경영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경영 구루와의 대화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⑤

A.기업도 사회적 존재로 어떤 의미에서는 인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지역사회에서 기업시민으로 처신해야 합니다. 이런 역할을 소홀히 하면 기업으로서 존속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볼 때 사회적 책임의 이행은 지속가능한(sustainable) 경영의 한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엔 면세점·식당 등 약 570개 업체가 입점해 있습니다. 우리의 고객이자 사업 파트너들이죠. 이 밖에 보안업체 등 공항의 운영에 종사하는 업체와 여러 정부 기관들도 입주해 있습니다. 모두 3만5000명에 이르는데 저는 이들을 우리 패밀리라고 부릅니다. 소속된 조직은 서로 다르지만 인천공항 패밀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나라는 거죠. 이 가운데 우리 공사 직원은 850여 명에 불과합니다.

미국발 경제위기가 닥쳐 지난해 우리가 공항 입점료를 10% 내렸습니다. 입점 업체들에 금액으로 1238억원을 지원한 셈입니다. 진짜 패밀리라면 이런 국가적인 경제위기에 봉착해 어려운 사업 파트너들에게 마땅히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죠. 업체들이 경제난으로 사업이 안 돼 떠난다면 패밀리도 무너지는 겁니다. 당시 우리 직원들에게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경영회의 때 사장단에게 설파했다는 두 가지 룰을 강조했습니다. ‘첫째 당신의 고객으로 하여금 절대 손해 보게 하지 마라. 둘째 첫 번째 룰을 잊지 마라’.

공기업이다 보니 민간 기업에 이렇게 할인을 해줬다가 나중에 무슨 오해를 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내부에 있었습니다만, 기우였습니다. 정부에 몸담고 있는 분들 가운데 그러다 큰일 난다고 하던 사람들도 나중엔 잘했다고 하더군요. 사실 모든 일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처리하면 다른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는 할인해 주고 누군 안 해 준 게 아니거든요.

과거에 없었던 일이기에 업체들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감사 전화도 많았고 직접 찾아와 감사 인사를 건넨 이들도 꽤 됩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입점 업체 직원들에게 진정한 패밀리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인천공항이라는 우산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패밀리라는 생각들을 비로소 하게 된 거죠. 입점료 할인은 선례도 없거니와 사실 아무도 요청도, 기대조차도 하지 않은 일이거든요.

인천공항이 전 세계 1700개 공항 가운데서 5년 연속 세계최고공항상을 받은 것은 이런 패밀리 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패밀리로서의 결속력이 생긴 겁니다. 공항 서비스 업그레이드라는 것이 공항공사 직원들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당시 우리는 국가적인 경제난 속에서 입점 업체들과 상생하기 위해 우리 공항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았습니다. 전에 안 해 본 일이라 내부적으로 충분한 토의의 과정도 거쳤어요. 그런데 고객인 입점 업체들이 감동하고 결속력이 생기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 직원들도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마인드의 전환이 일어난 겁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상생에 대한 학습이 이뤄집니다. 유사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노하우가 생기게 마련이죠.

지난봄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유럽 하늘을 온통 뒤덮었을 때의 일입니다. 일부 국가의 영공이 폐쇄되고 대부분의 공항에서 항공기 결항이 속출했었죠. 승객들은 며칠씩 공항에 발이 묶였습니다. 우리는 객지에서 고생하는 이 사람들에게 빵과 음료수를 제공하고 실내 온도도 맞춰줬습니다. 경비업체 사람들도, 청소용역업체 사람들도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려고 애썼죠. 이들은 돌아가서 감사의 메일을 띄웠습니다. 이런 게 바로 사람 사는 모습이죠. 사람의 향기라고 할까요? 아, 당시 항공사들은 주기장 사용료를 깎아줬습니다.

우리는 덤핑을 막기 위해 최저가 낙찰을 하지 않습니다. 가령 경비업체를 선정하면서 최저가 낙찰 방식으로 하면 해당 업체 직원들이 급여를 제대로 못 받습니다. 그러면 구조적으로 상생이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입찰 때 일정 수준 아래로 가격을 적어 내면 배제시킵니다.

지역에서는 할머니·할아버지 등 주민들을 초청해 공항 투어를 시켜 드리고 전망대로 안내합니다. 이렇게 한번 돌아보고 나면 공항을 만들 당시 땅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던 분들도 세계적인 공항이 들어선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합니다. 이 밖에 문화복지관도 짓고 자사고 설립도 추진 중이죠. 이렇게 지역사회와 소통하다 보니 공항에 대해 부정적인 현수막이 마을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와 함께 떼법도 사라졌습니다. 과거 환경단체, 문화재 단체 등 각종 사회단체에서 찾아와 자주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면서 사장을 만나겠다고 하면 공사 직원들은 이들을 만류하느라 쉬쉬하면서 요구 조건을 들어주곤 했어요. 진짜 문제가 있으면 사장이 만나야죠. 합리적이고 정당한 요구는 수용해야 하고요. 그런데 막상 들어 보니 불합리한 요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시위는 얼마든지 해도 좋지만 불합리한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또 “시위 도중 위법한 행위를 하면 즉각 고발하겠다”고 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34일간 천막농성을 벌인 일이 있습니다. 불합리한 요구를 하기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더니 나중엔 주동자가 사장을 5분만 만나게 해 달라고 하더군요. 차 한잔 하고 난 그가 “요구사항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하고는 돌아갔습니다. 사람들에겐 이렇게 말하더군요. “내가 사장을 만났는데 공사 측이 적극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해산.”

지난해 봄엔 인천공항 자원봉사단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305명이 활동 중인데 연간 3만원씩 회비 내고 활동합니다. 보육원·양로원 등을 찾아 연탄 배달, 목욕 시키기, 영정사진 찍어 드리기 등 몸으로 때우는 봉사를 하죠. 보육원 봉사는 보통 50명가량이 가는데 늘 신청자가 넘칩니다. 유일한 보상은 봉사활동을 통해 누리는 즐거움과 감동이죠.

부족한 활동비는 제가 외부 강연 다니면서 받은 강연료로 충당을 합니다. 봉사단장에게 “돈이 부족하면 내가 채우겠다. 활동비가 남아돈다면 당신이 일을 제대로 안 한 것”이라고 말해 줬습니다.

남을 직접 도와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사회봉사는 모든 리더들이 치러야 할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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