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위험한 '煙'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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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최근 서울 S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은 정모(48·여)씨. 살면서 한번도 담배를 가까이 한 적이 없는데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결혼생활 20년째인 그는 담배를 하루 두갑 이상 피우는 애연가 남편을 둔 '죄'로 폐암환자가 됐다고 생각한다.

눈가의 잔주름 때문에 지난주 서울 L피부과 의원을 찾은 이모(29·여)씨는 매일 담배를 10개비 이상 피우는 흡연 경력 10년차 직장여성. 의사에게서 "흡연으로 인해 피부노화가 빨라져 잔주름이 나이보다 일찍 생긴 것"이란 조언을 듣고 놀라 금연을 시도하고 있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에게 금기시돼온 흡연. 최근 여권(女權)이 높아지고 남녀평등이 보편화되면서 여성 흡연을 용납하지 않던 사회적 제약이 함께 풀렸다.

그러나 통계 수치상으론 우리나라 성인 여성의 흡연율은 감소하고 있다. 1980년 12.5%에서 지난해 3.1%로 낮아졌다. 20여년 전엔 50,60대 여성의 흡연율이 20~50%에 달했으나 95년 이후 2~3%대로 떨어진데 기인한다.

그러나 여성 흡연율은 이제 바닥을 치고 반등할 것으로 점쳐진다. 90년대 이후 여자 중·고생과 20대 등 젊은 여성 흡연자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흡연 인구의 증가는 곧 흡연으로 인해 건강상 피해를 보는 여성이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흡연이 왜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해로운가를 알아보자.

◇흡연 피해, 남성보다 크다=흡연은 남녀 모두에게 해롭다. 그러나 자궁외 임신·조기 폐경 등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흡연 피해도 있다. 흡연 여성의 폐경 연령은 평균 1~2년 앞당겨진다. 여성의 흡연은 자궁경부암과 직장암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흡연 여성은 직장암에 걸릴 위험이 비흡연 여성의 6배에 달한다(미국암연구소지 1999년 4월 21일).

미국 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흡연 여성은 월경전 증후군도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흡연은 여성의 수정(授精)능력을 떨어뜨려 불임 가능성을 높인다. 담배의 니코틴이 난관 기능에 영향을 미쳐 난자가 자궁으로 헤엄쳐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흡연은 심장병 발생 위험도 높인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흡연 여성이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은 비흡연 여성의 2~6배.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송윤미 교수는 "경구 피임약을 복용하는 흡연 여성의 관상동맥 질환 위험은 이 약을 먹지 않는 여성의 10배 이상"이라며 "35세 이상 흡연 여성은 경구 피임약을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대 에바 프레스콧 박사는 흡연 여성의 심근경색 발생위험은 흡연 남성의 1.5배라는 주목할 만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담배의 니코틴 성분이 난소로 가는 혈액공급을 방해해 심장병을 예방하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의 분비가 줄어든 결과라는 것이다.

◇여성 흡연은 피부의 적=서양에선 창백하고 누렇게 변한 흡연자의 얼굴을 '시가렛 페이스'라고 한다.

서울아산병원 피부과 성경제 교수는 "흡연하는 여성은 비흡연 여성보다 주름살이 3배 정도 증가한다"며 "담배엔 피부 노화를 막아주는 각종 항산화(抗酸化)제를 없애는 성분이 들어있고 담배의 니코틴이 피부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을 수축시킨 결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혈관이 수축되면 피부 온도가 낮아져 손발이 차갑게 느껴지는 현상도 생긴다.

◇임신부 흡연은 금물=임신부의 흡연은 임신·출산은 물론 출산 후 자녀 발육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순천향대 산부인과 이정재 교수는 "임신부가 흡연하면 태아의 발육부전,조기 진통·조산에 따른 미숙아 출산 가능성이 커진다"며 "언청이·심장 기형 등 기형아 출산과 주산기(임신 32주부터 생후 1개월까지)아기 사망률도 두배 가까이 증가한다"고 경고했다.

태아의 체중도 평균 5백g 정도 감소한다. 니코틴이 태반 혈관을 수축시켜 태아 발육에 필요한 산소의 공급을 줄이고 담배의 일산화탄소가 혈액내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빈혈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임신부 자신에겐 유산 위험을 높인다(비흡연자 대비 1.7배). 자궁외 임신·전치 태반(태반이 자궁입구를 막음)·태반 조기 박리(출산 전에 태반이 떨어져나감)·조기 양막 파열 등 위험도 따른다.

또 흡연 여성이 낳은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지능 저하·정신 박약·사회적응 능력 부족·폭력성 등 문제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큰 결단이 필요하다=임신하면 담배를 끊겠다고 말하는 여성이 많다. 그러나 영국의 조사에 따르면(임신과 출생지, 2000년 3월) 임신 중 금연하는 여성은 26%에 불과했다.

인제대 백병원 가정의학과 서홍관 교수는 "여성은 흡연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 남자보다 크다"며 "흡연 여성이 1년 이상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5%가 안되는 만큼 큰 결단과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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