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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노 웨이 아웃’ MB와 박근혜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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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늘 그랬듯 그들 앞에 거대한 암초가 놓여 있는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관계다. 신임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취임 일성(一聲)은 ‘소통(疏通)의 정치’ ‘상생(相生)의 정치’였다. 하지만 아버지·어머니 얘기가 서로 다르니 여권의 소통과 상생이 쉬울 리 없다. 자녀 교육에서 가장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게 아버지·어머니의 말이 다를 때라고 하니 여권의 갈지자 걸음은 누굴 탓할 일도 아니다.

28일 재·보선을 전후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만날 모양이다. 이번 만남은 지난 다섯 차례(한 차례는 비공개)의 회동이나 지난해 9월 마지막 만남과는 성격이 확연히 달라졌다. 두 사람의 권력 입지가 지난해 9월과 달리 모두 어려워진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올 1월 초 지지율은 40.4%(리얼미터 조사)였다. 대선 후보 경선 당시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던 게 상반기의 세종시 원안-수정안 공방, 6·2 지방선거를 거치며 6월 넷째 주엔 22.7%까지 내려앉았다. 특히 “행정부처 이전의 경제·사회적 비용을 걱정하는 오피니언 리더 그룹에서의 지지도 하락 폭이 더 큰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락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내부 분열로 한나라당 지지율이 떨어지니 덩달아 떨어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박 전 대표의 개인적 측면을 거론하는 분석이 많다. 현 정권 들어 오랜 침묵과 잠행(潛行)을 계속해 온 때문에 지지율을 지탱해 줄 자신만의 메시지가 없었다는 측면이다. 특히 세종시 공방 등을 통해 현직 대통령과 상충되는 입장을 고수해 온 데 대해 보수 세력의 혼선, 실망감과 함께 피로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나라당 내에서 감도는 ‘박근혜 공포증’ 현상 역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중도성향의 한 초선 의원은 “이번 7·14 전당대회에서 친이(親李)계의 중진 의원이 ‘박 전 대표가 집권하면 당신도 어렵다. 다음에도 공천 받아야지’라며 확실히 줄 서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 2008년 총선이나 올 지방선거 공천 을 볼 때 박 전 대표가 공천에 적극 개입하는 스타일도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분위기가 흐르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지지도 하향의 세 번째 요인은 잠재적 경쟁자들의 부상이다. 그간엔 박 전 대표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거치며 김문수·유시민·오세훈·한명숙 등의 인지도가 부쩍 늘어나 선택지가 늘어난 게 지지도 유출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 전 대표가 이런 상황을 계속 방치하기엔 다음 대선 후보 경선 때까지 2년은 너무 긴 정치적 시간이다. 박 전 대표가 이번 이 대통령과의 만남을 계기로 뭔가 이미지와 메시지의 전환점을 마련해야 할 이유인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지방선거 참패와 잇따른 재·보선의 패배로 어수선해진 국정의 구심력을 추슬러야 할 때다. 여권의 깊은 골을 계속 방관할 경우 자칫 별다른 업적 없는 대통령으로 남을 우려도 있다. 세종시 수정안은 물 건너 간 상황인 데다 4대 강 사업마저 기약할 수 없는 처지 아닌가. 2인자 박 전 대표에겐 긴 시간이겠지만 현직 대통령에게 남은 2년여의 시간이란 결코 여유가 없다.

집권 중반을 넘기면서는 사실 퇴임 후 위상이나 안전판도 한 번쯤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대한민국 대통령직의 속성이다. YS나 DJ는 강력한 지역 기반과 지지층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충성스러운 노사모가 있었지만 퇴임 후 다가온 시련을 감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지지 계층이나 참모들의 충성도와 응집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를 이 대통령은 받고 있다. 그에게 ‘포용’ ‘업적’ 이외에 수성(守城)의 해법이란 과연 뭐가 있을까. 처절한 권력 싸움을 통해 ‘서슬 퍼런 권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란 애당초 비즈니스 맨 출신의 ‘MB 스타일’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모든 그랜드 바긴은 자신이 지닌 세력과, 그 한계에 대한 냉철한 판단에서 나온다. 두 정치인의 이번 만남을 주시하는 이유 역시 매우 역설적이다. 다시 빈손으로 헤어질 경우 두 지도자 모두 ‘출구 없는(No Way Out)’ 힘든 상황을 맞기 때문이다.

최훈 토요섹션 j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