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비리의 겉과 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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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화여대 주철환 교수가 새 연재물을 시작합니다. 주교수는 MBC TV에서 '장학퀴즈''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PD출신입니다. 그는 요 몇년간 대학에서 이론적인 공부와 교육의 경험까지 쌓음으로써 '현장을 아는 이론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습니다. 이번 연재는 이런 자신감을 토대로 연예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거울'처럼 드러내고 앞으로 연예산업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어떤 것인지를 '나침반'처럼 정확히 제시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비슷한 화면이 올 여름 TV 뉴스에서 연일 반복되었다. 물난리와 병역비리, 그리고 연예비리와 관련된 것들이다. 난리건 비리건 모든 사건들의 원인에는 인간의 욕심이 도사리고 있고 그것의 반복에는 안일과 해이가 있다.

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게 마련이다. 가해자는 벌을 받아야 하고 피해자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 연예비리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피해 보상을 청구하기 위해 우선 그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보자. 첫째 피해자는 정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PD와 연을 맺지 못해 처음부터 출연이 좌절 혹은 봉쇄된 이들이다.

그 다음 피해자는 질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묵묵히 땀흘린 많은 PD들이다. 그들은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가족과 친지 사이에도 묘한 시선이 감지되었다며 울분을 토로한 연예PD도 있었다.

그러나 진짜 피해자는 일부 PD들과 그들에게 빌붙은 연예기획사의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정작 질 좋은 문화상품을 다양하게 접할 기회를 놓친 애꿎은 시청자들이다.

첫째,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실력을 검증받을 수 있는 작은 무대들이 훨씬 많아져야 한다. 맨날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오락프로그램을 대폭 줄이고 그 자리에 참신한 신인들을 발견· 발굴· 육성하는 프로그램들을 과감하게 편성해야 한다. 인터넷에도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안목이 높은 네티즌 PD들이 많으므로 지상파 방송사가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도 한 방편이다.

둘째, 피해자인 선량한 PD들이 구제받기 위해선 먼저 그들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프로그램뿐 아니라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발언하고 동시에 그들이 하는 일을 세상에 투명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PD는 프로그램으로만 말한다'던 시대는 지났다. 시청자와 함께 방송을 만든다는 각오와 다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시청자 차례다. 그들은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정당한 유권자다. '싫으면 내가 안 보면 그만'이라고 말하지 말자.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면 상응하는 손해가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손해를 보면 한번에 몰아서 분노하거나 야단치지 말고 그때그때 상품의 유통과정을 눈여겨보자. 그럴 여유가 없다면 그런 일에 앞장선 사람들의 조언에 잠시나마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이번 연예비리는 작게 보면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일부 연예기획사 대표와 그 대가로 연예인들을 자신의 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출연시킨 PD들이 주범이지만 크게 보면 숨막히는 경쟁에 방치된 방송제작환경과 그것을 적절히 통제해야 하는 책무를 진 상층부의 기회주의적 처신이 주원인이다.

기회주의란 이익이 없거나 사라지면 이익을 좇아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는 행동양식이다. 시청률 올려 주는 PD가 다소 도덕성에 문제가 있더라도 "그는 전문가야"라면서 눈감아 주다가 문제가 커지면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며 발을 빼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사회가 너무 소탐대실(小貪大失)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에 질리게 된다. 권위주의가 사라지는가 했더니 어느새 세상이 기회주의의 온상으로 바뀌었다. 새로 정당을 만들려는 이들도 이념보다 이익을 좇아서 모이고 흩어지는 모양이 역력하다. 정치와 방송 모두 원래의 뜻은 제1장에 이미 나와 있다. 방송(放送)은 멀리 보낸다는 뜻이다. 종소리를 멀리 보내기 위해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chjoo@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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