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서 몽골까지 배낭 하나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4면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지 벌써 14년이 흘렀다. 대학생을 주축으로 시작된 배낭여행은 그동안 젊은 직장인과 교사 등으로 저변이 확대됐다. 그런가 하면 유럽이나 미국 등 하나의 대륙을 샅샅이 훑고 다니는 가족단위 여행객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이성(현 서울시 구로구 부구청장)씨는 휴직을 한 채 가족을 모두 이끌고 1년간의 세계여행을 다녀와 세계일주 여행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지난해에는 20대의 두 여성이 1년8개월간 전세계 70여개국을 일주했다.

"여행은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 떠나는 것이에요. 일상에서 벗어나 경직된 사고의 틀을 넓혀주고 나 자신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지요. 그래서 사전에 계획을 세웠지만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스폰서 업체가 정한 일정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즐거워야 할 여행이 일로 바뀌게 되더군요."

2000년 1월 한국을 떠나 1년8개월간 남극을 포함해 세계일주를 마쳤던 시나리오 작가 강영숙(28·여)씨는 함께 여행했던 박수정(26·여·베네데스 상사)씨와 함께 최근 『벌거벗은 세계일주』라는 체험기를 책으로 펴냈다.

강씨는 "노력하는 사람의 꿈은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며 "세계일주 희망자 중 두명을 뽑는 시험에서 세차례의 관문을 통과하고 막연하게 꿈꿔왔던 세계일주가 어느 날 현실로 다가오자 우선 흥분이 됐다"고 회고한다.

처음 10개국 정도 여행할 때만 하더라도 우리와 다른 풍경이나 문화유적들만 눈에 들어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 사는 것은 어디를 가나 똑같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됐다고 한다.

또한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은 경비보다 직장·가족 등과 헤어져야 한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했다. '하나를 버려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만 가지면 두려움도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1년반을 여행하면서 마음에 드는 남성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왜 없었겠어요. 외로움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좋은 감정인지 헷갈릴 적도 있었지요. 그러나 여행 중의 만남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하고는 다르기 때문에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는 답변이 나왔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만난 사람이 말한 '여행은 학교이고 만나는 사람은 모두 자신의 선생'이라는 이야기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여행 기간 중 좋은 학생이 되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여행을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지나니까 비로소 집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실컷 우는 것이 '최고의 치료제'라고 말한다.

두번의 도전 끝에 지난해 12월 남극 세종기지(//sejong.kordi.re.kr)에서 일반인으로는 처음으로 2주일간의 남극생활을 경험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일주를 하면서 '내 자신이 누구라는 것'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강씨는 "여자이기 때문에 보호받으려고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집을 떠나면 남자나 여자나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예요. 여성이라고 체력적인 어려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므로 관념의 벽을 깨야지요"라고 세계일주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충고한다.

스폰서로부터 받은 1인당 기본 비용 1천5백만원씩. 그리고 약 3백만원씩의 용돈을 쓰며 1년8개월간 70개국을 여행한 두 맹렬 여성의 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꿈을 펼치려는 그들의 마음은 벌써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이 책에는 세계일주를 계획하고 있는 배낭여행객을 위해 ▶총 비용 ▶여행계획 세우기 ▶대륙간 이동은 어떻게 하나 ▶꼭 가봐야 할 곳 ▶건강과 보험 체크 ▶새로운 세계일주 루트 세우기를 담았다. 또 권말에 각국의 숙소·음식·이동경로 등 상세한 정보를 두권에 나눠 수록했다.

성하출판사(02-2273-4451)에서 펴냈다. 1권(4백40쪽)은 남극을 비롯해 아시아·중동·유럽, 2권(4백20쪽)은 미주대륙·대양주·아프리카·발트3국·러시아·몽골 등을 소개하고 있다. 각권 1만2천원.

두 여성이 '벌거벗은 세계일주'를 펴낸 동기는 세계일주를 하면서 한국인이 다른 민족에 비해 매우 똑똑한 것을 알게 됐고 좁은 땅에서 아옹다옹하지 말고 더 넓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 위한 것.

김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