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편 보고 가세나] 18. 불같은 성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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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1990년 "장군의 아들" 촬영장에서 임권택 감독, 윤탁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과 함께한 필자(왼쪽부터).

'성격이 운명'이라지만 어디 가나 불 같은 성격 때문에 화를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애주가인 임권택 감독도 나와 함께하는 술자리는 가능한 한 피하려고 할 정도다. 그렇다고 내가 뭐 상습적으로 주정을 부린다는 말은 아니다. 태생적으로 가무(歌舞)를 즐기는 쪽이어서 대개는 술자리를 흥겹게 끌고가는 편이다. 단지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거나 자존심이 상처를 받았다고 느낄 때 말 그대로 화산처럼 폭발해 버린다. 그 순간은 내 이성이 어디로 도망가 버리는지 누가 말려도 소용이 없다.

1992년 정지영 감독의 '하얀 전쟁'이 도쿄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을 때다. 수상 기념파티를 연다고 해서 임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안성기.강수연씨와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 마침 김동건 아나운서가 와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인 그와는 형, 동생 하며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 자리에서 김씨의 소개로 모 국회의원과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관록 있는 다선(多選) 의원으로 당시 국회 문화체육위원이었다. 파티가 끝나고 우리 일행은 김동호 문화체육부 차관(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윤탁 영화진흥공사 사장과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잔을 돌리며 얘기를 나누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무대에 나가 마이크를 잡는 식으로 분위기가 익어갔다. 그런데 그 의원 차례가 됐을 때였다.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야 김동호, 윤탁. 내가 노래 부르는데 얘기하지 마, 노래 안 듣고 계속 얘기하면 이거야" 라면서 손으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문화부 차관이나 영화진흥공사장쯤은 자기 손에 달렸다는 투였다.

참 어이가 없었다. '명색이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이들이 모인 자린데 …, 지가 국회의원이고 문화체육위원이면 다야?' 모욕감으로 표정이 일그러졌는지 내 성미를 잘 아는 정 감독이 눈치 빠르게 슬며시 다가왔다. "이 사장 참아, 참아. 술김에 하는 소리니 신경 쓰지 마"라며 다독거렸다.

그런데 그때 의원이 무대에서 내려오며 "내가 얘기하지 말랬잖아" 라면서 손바닥으로 세 차례나 내 머리를 내리치는 것이었다. 순간 자리에서 튀어 오른 나는 주먹으로 그의 면상을 가격했다. 제대로 맞았는지 그가 '쿵'하고 나가떨어졌다. 화가 오를 대로 올라 눈앞에 보이는 게 없는데 김 아나운서가 두 팔을 꽉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형님, 참으세요. 그만하면 됐어요." 쓰러졌던 의원도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잘못했소이다"라면서 고개를 숙였다.

막상 사과를 받자 분이 풀리며 집 나갔던 이성도 되돌아왔다. 그러자 '큰일났다' 싶었다. 나야 별 상관없지만 김 차관이나 윤 사장이 나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상 이럴 때는 확실한 인상을 심어줘야 뒤탈이 없는 법이다. 그 의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테이블에 있던 포크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세 차례나 내 이마를 세게 찍었다. 이를테면 자해(自害) 공갈을 한 셈이다. 다들 멍하니 쳐다보는데 이마에 난 아홉 개의 구멍에서 피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김 차관, 별 일 없어요?" "그러잖아도 아침 일찍 의원이 전화했어요. 이 사장님이 화끈해서 마음에 든다며 언제 정식으로 소개해달라던데요." 그날 오후 9시 TV 뉴스에서 입술이 부르튼 그 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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