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는 盧가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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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좋아한다. 고양이 쥐 생각하기 식이랄까. 한나라당 대선본부 기획단장인 신경식 의원 등을 만나노라면 왜 후보를 좋아하는지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대세론에 도움'진단

한나라당 대선 구상에 '55-45'와 '45-35-20'이라는 전략 시뮬레이션이 있다. 전자는 양자 대결, 후자는 3자 대결을 각각 가상한 후보별 득표율이다. 어떤 경우든 이회창 후보가 10% 우세로 판가름 낸다는 것이다. 또 둘 중 후자의 가능성을 크게 봤다. 김대중(DJ)대통령이나 민주당이나 독자 후보로는 이길 수 없음을 아는 만큼 후보 견제를 위해 제3후보를 내세우리라고 한나라당 사람들은 예상한 것이다. 특정세력이 '만들지' 않더라도 그게 누구건 우리 정치구도상 나오게 돼 있다고 단언했다.

3자 대결 구도에서 35는 후보의, 20은 제3후보의 득표율을 가리킨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이인제 의원의 "DJ의 지지율 최대치는 34%"라는 지적을 간파했으며 후보도 그 언저리에서 맴돌 것임을 확신했다.

게다가 제3후보로 거론되는 정몽준 의원이나 박근혜 의원을 3자 대결 구도에 대입하면 후보 지지표를 잠식하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다. 거기에 후보의 거세던 바람이 주춤한 상태이니 좋아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5월까지 연일 후보를 두들기다 6월 이후엔 불과 서너건의 비난 논평을 낸 데서도 한나라당의 수가 읽힌다. 검증과정에서 부(否)판정이 나왔다고 본 후보를 '보호'하려는 배려였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8·8 재·보선 전부터 끓던 민주당 일각의 후보 낙마용 신당 만들기가 선거참패로 급류를 타고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후보에 대한 입장도 바뀌는가? 현재로선 그렇지 않다.

후보가 반노(反)그룹의 거세 기도를 뿌리치고 민주당 적통을 잇는 후보가 되는가, 이한동 전 총리나 정몽준 의원에게 밀려 제3후보로 전락하는가 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당분간은 지금의 선호가 유지될 것 같다. 아니 '간접지원'까지 있을 수 있다. 후보가 흔들리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그가 신당 후보로 확정되면 그 반대겠지만.

이런 한나라당의 대응 기본은 역시 '이회창 대세론'을 흩뜨리는 정치판도의 급변이 부담스러운 탓이다. 후보의 L특보는 전총리나 鄭의원이 대단해서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속내를 안 드러내지만 후보가 상대하기 편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전총리에 대해선 일반 국민까지 바탕을 꿰고 있고, 鄭의원은 검증에 들어가는 동시에 거품이 빠질 것이라는 말로 후보를 은근히 치켜세웠다. 鄭의원의 경우는 '출생·병력·재벌 가계·언변' 등으로 인한 한계가 뻔하며, 민주당도 그 점을 잘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정밀무기'도 상당량 비축했다고 한다.

6월후 비난논평 줄어

겉으론 그러면서도 한나라당 전반엔 경계의 분위기가 확연하다. 辛단장은 "골치 아프다"고 토로했다. 표적 재설정,후보 흠집내기 차단 등 할 일이 태산같다는 얘기다. 다만 DJ정권의 부패·무능에 대한 분노가 원체 깊고, 신당이 그 후계라는 점을 국민이 알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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