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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place 뜨는 상권 현지 르포] ② 서울 강남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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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6번 출구 주변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도로변을 따라 나란히 서 있는 검은기둥은 강남구청이 설치한 미디어폴이다. 미디어폴에서는 뉴스 검색 등이 가능하다. [강남구청 제공]

2010년 서울의 20~30대 젊은이들이 선택한 뜨는 상권 2위는 ‘강남역 일대’다. 조사 대상 1047명 중 17%인 173명이 이곳을 꼽았다. 강남역 상권의 핵심은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9호선 신논현역에 이르는 강남대로 길 양편 760여m 구간이다. 엄밀히 말하면 강남역은 새롭게 뜨는 상권이라기보다는 한 차례 부침을 겪고, ‘다시 뜨는 상권’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1980~90년대 전성기 시절의 강남역이 젊은층의 소비 중심지였다면, 지금은 소비와 사무실이 어우러진 복합상권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게 예전과 다른 점이다.

19일 오후 3시. 서울 강남역 6번 출구 앞. 월요일 낮시간임에도 길에는 행인이 빼곡했다. 시티극장 앞을 지나던 이영성(42·회사원)씨는 “평일에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은 강남역밖에 없을 것”이라며 “삼성타운을 비롯한 회사들이 이 일대로 옮겨오면서 길거리에 사람이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역 일대는 84년 서울지하철 2호선이 완전히 개통된 이래 대한민국의 대표 상권으로 부상했다. 부동산 업계에선 이곳을 두고 “교통과 입지 등 모든 면에서 자연스레 잘나갈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90년대 중반까지 뉴욕제과를 중심으로 카페·나이트클럽·의류점 등이 빼곡히 들어서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젊은층 중심의 소비 상권이었던 이곳은 90년대 후반부터 인근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정보기술(IT) 기업과 대기업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소비뿐 아니라 사무실이 밀집한 복합상권으로 변모했다. 특히 2000년을 전후해 벤처기업 열풍이 불면서 호황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2002년을 고비로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이 일대 상권도 침체를 거듭했다. 젊은이들이 인근 압구정동이나 청담동 등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강남역 상권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건 2007년 중반부터 시작된 삼성타운 입주다. 연면적 39만㎡ 규모의 삼성타운에는 삼성그룹 소속 직원만 2만5000여 명이 상주한다. 유동인구까지 합하면 삼성타운 입주로 하루 평균 10만 명 정도가 강남역 상권에 유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상대적으로 한산했던 테헤란로 건너편 상권도 삼성타운 입주 덕에 활성화됐다. 직장인 수요가 몰리면서 오피스텔 임대 수요도 늘었다.

강남역 상권은 강남대로를 중심으로 크게 동쪽과 서쪽의 두 가지 상권으로 나뉜다. 동쪽의 중심지는 강남역 6번 출구 인근인 뉴욕제과에서 광역버스 정류장 쪽인 지오다노 강남점과 신논현역 부근의 교보생명빌딩 방향으로 이동 중이다. 동쪽 상권의 이면도로에는 술집과 노래방 등 유흥가가 밀집해 있다. 서쪽 상권의 중심은 시티극장이다. 시티극장 뒤편의 언덕길에는 먹자 골목이 있다. 이면도로를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카페촌이 나온다.

◆강남역의 힘…유동인구=강남역 상권의 저력은 막대한 유동인구에서 나온다. 강남역에서 승·하차하는 사람이 하루 평균 21만 명(강남구청 추산)에 달한다. 강남역 지하상가에만 210여 개 업체가 성업 중이다. ㈜강남역쇼핑센터 윤종희(71) 대표는 “20여 년 전 처음 상가가 문을 열었을 땐 권리금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상권이 약했지만, 지금은 서울시내 지하상가 중 드물게 장사가 되는 곳”이라며 “주말 유동인구는 35만~40만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주요 패션 브랜드도 높은 임대료 부담에도 불구하고 강남대로 양편에 앞다퉈 매장을 내고 있다. 강남역처럼 구매력 있는 20~30대 젊은 소비자가 한꺼번에 몰리는 지역이 드물기 때문이다. LG패션은 지난해 11월 강남대로 주변에 660㎡(200평) 규모의 매장을 냈다. 이 회사 김인권 팀장은 “임대료가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강남역 매장은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유동인구도 워낙 많아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강남역 상권의 핵심이랄 수 있는 강남대로 길 양편은 유명 의류 브랜드나 커피 체인점, 은행 지점, 카메라·휴대전화 매장 등의 전시장으로 불릴 정도다. 이 지역은 또 지하철 2·9호선 외에도 경기도 분당·용인 등으로 출발하는 대부분의 버스가 정차하는 수도권 남부 교통의 중심이기도 하다. 강남구청 측은 “강남역을 지나는 시내·광역버스 노선이 40여 개에 달해 실질적으로는 서울뿐 아니라 경기 남부권 소비자들까지 여기에서 소비를 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 하지성 과장은 “지금이라도 강남대로 부근에 부지를 확보해 점포를 낼 수만 있다면 당장 업계 최고의 점포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강남역 주변 사무직 근로자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증권회사와 은행 PB서비스 전문점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즐길거리 부족한 게 약점=홍대 입구처럼 널찍한 문화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은 강남역 상권의 약점으로 꼽힌다. 직장인 조나빈(29·여)씨는 “회사가 강남역 근처여서 회식을 자주 하지만, 회식 후에는 달리 할 일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상권의 중심인 강남대로의 경우 극장 체인인 CGV강남과 시티극장·교보문고 강남점 등을 제외하면 별다른 문화공간이 없다.

유동인구가 많고 복잡한 탓에 길거리 공연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형편이다. 125개(2009년 6월 기준)의 소극장이 자리 잡은 서울 대학로와 대조적이다. 그나마 90년대 중·후반까지 명맥을 유지하던 일부 나이트클럽 등도 2000년대 들어 모두 철수했다.

높은 임대료 부담으로 중소 자영업자들은 상권의 중심인 강남대로 주변에서 이면도로 쪽으로 밀려나고 있다. 홍대 입구를 찾는 사람들이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는 것과 달리 강남역에선 유동인구 대부분이 강남대로 길 양쪽의 핵심 상권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이면도로 쪽에는 의외로 고전하는 상점이 많다.

하지만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강남구청은 2007년부터 85억원을 들여 ‘강남대로 특화거리(U-Street)’ 조성사업에 나섰다. 가로등 같은 시설물의 디자인을 일치시켜 강남역만의 개성을 불어넣으려는 작업이다. 주민자율협의체를 구성해 강남대로 주변에 있는 돌출형 간판 수를 종전 446개에서 200여 개로 줄이는 등 보행환경 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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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강남역 상권에 입점해 있는 자영업자들과 업체들 주도로 점심시간을 활용한 게릴라 공연 등이 열려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기도 한다. 강남구청 오정은 도시디자인실장은 “강남역 상권을 두고 홍대 입구나 대학로와는 달리 점점 개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처럼 강남역만의 뚜렷한 개성을 살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 3회는 부산의 뜨는 상권인 해운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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