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제 절충은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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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주5일제 도입은 국민 대다수의 여망이고 또 피할 수 없는 대세다. 그럼에도 경영계는 아직도 이를 저지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주5일제 문제가 논의된 지난 2년여 내내 경영계는 때로는 '시기상조다'라고 사실상 반대하다 국민여론에 밀려 논의하는 척은 했지만 노동계가 받아들일 수 없는 휴일휴가 삭감이나 무급화, 탄력근로제 도입 등을 내걸어 합의를 어렵게 하는 전술을 구사해왔다.

또 노동계의 핵심요구였던 휴일휴가제도 변경에 따른 임금보전 문제도 경영계는 마치 수용할 것처럼 얘기해오다 막판 논의가 이뤄진 7월 22일 노사정위원회 본회의에서는 임금보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왔다갔다 했고, 임금보전의 구체적 담보방안을 합의문에 넣자는 노동계 측 요구를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논의를 결렬시켰다. 경영계의 이러한 태도는 지자체선거 결과나 일부 정치지도자의 친경영자적 발언으로 더 고무돼 왔던 것이다.

주5일제 문제는 이제 정부 손으로 넘어갔지만 절충적인 방향으로 입법할 가능성이 커 크게 우려되고 있다. 만약 그런 식으로 입안되면 노동계 투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정부는 국민의 여망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의 기조와 대전제를 노동자, 나아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질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첫째, 기존 임금총액이 저하돼서는 안된다. 대다수 노동자들이 저임금을 받고 그래서 잔업·특근, 그리고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시간단축으로 소득이 감소된다면 삶의 질 개선이 아니라 개악인 것이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보전 장치가 마련되더라도 그것을 보장받기 어려운 비정규직들은 그 피해가 더 클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보호방안을 동시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둘째, 노동시간 단축 입법화가 이뤄지더라도 가능한 한 짧은 기간 내에 전 사업장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장시간 노동이 횡행하는 영세사업장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기업여건이 좋은 곳부터 시작하면 사회적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셋째, 노동의 질을 저하시키는 노동시간 단축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노사정위원회 공익안대로 탄력근로제가 1년 단위로 허용되면 사용자들은 임금삭감을 위해 이 제도를 광범하게 활용할 것이며 노동자들은 임금삭감뿐 아니라 노동시간의 불규칙성과 장시간화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노동시간 단축은 경영계가 주장하는대로 단위노동비용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에 대해서는 차이가 많으나 설사 경영계의 주장대로 하더라도 10여%며 이는 한 해의 임금인상률 정도로 그 충격의 흡수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노동시간이 일단 단축되면 그것을 상쇄하기 위한 생산성 향상노력이 자동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게 된다. 노동자들도 기업의 이런 노력에는 적극 동참할 것이다. 또 설사 노동시간 단축으로 기업이 어려워지더라도 그 이후의 임금조정 과정에서 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충격을 흡수하는 노동시장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1989년도 노동시간 단축시 문제가 없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거기에다 여가시간 증대로 서비스산업 등의 투자영역 확대와 내수확충이 이뤄지게 되고, 국민의 일반적 직업능력이 향상됨으로써 기업활동은 더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정부지원이 강구돼야 한다는 데는 노동계도 찬성하고 있다.

경영계도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이 이익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노동자의 협력과 정부의 지원을 얻어낼 수도 있다고 본다. 어차피 주5일제 도입은 이미 대세로 비록 입법화가 안되더라도 노사교섭으로 도입될 수밖에 없으므로 반대해봤자 그 실효성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다 구럭도 게도 다 놓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나 정치권도 국민의 여망에 따라 역사를 진일보시킨다는 원칙적인 입장에서 주5일제를 추진해야지, 정치적으로 절충적인 접근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본지 8월 2일자 시론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의 '주5일 근무제의 전제조건'에 대한 반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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