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신화 ‘안테나게이트’에 무너지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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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호 08면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실리콘벨리의 쿠퍼티노 본사에서 ‘안테나게이트’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애플이 고객에게는 신뢰를 받고 있다”며 “우리의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이 이번 사태를 필요 이상으로 부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4 안테나송’으로 17일(한국시간)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미국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던 이 노래는 “아이폰4를 사고 싶지 않다면 사지 마라. 이미 샀는데 마음에 안 들면 환불하라”는 내용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파이낸셜 타임스(FT)·로이터·시넷 등 주요 언론은 인터넷을 통해 잡스의 기자회견을 생중계했다. 잡스의 목소리는 다소 격앙돼 있었다. 그는 30분 동안의 프레젠테이션 내내 아이폰4를 변호했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식이었다. 잡스는 “수신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스마트폰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잡스는 블랙베리(RIM)·드로이드(HTC)·옴니아2(삼성전자) 등을 직접 거명하며 “이들도 단말기를 감싸 쥐면 수신 감도가 낮아지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컨슈머리포트 추천 제외에 애플 긴급 기자회견

그러면서 잡스는 “아이폰4는 애플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다. 모든 스마트폰들 중 최상위의 고객 만족도를 보여준다. 안테나 문제를 알게 된 지 22일밖에 안 됐다.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했다”고 덧붙였다.

애플이 무료로 제공하는 아이폰4 케이스. 손이 안테나에 닿는 것을 막아 준다. [블룸버그 뉴스]

잡스는 안테나 결함 가능성을 알면서도 기존 디자인을 강행했다는 의혹도 부인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애플의 선임 기술자로 안테나 전문가인 루벤 카발레로씨가 지난해 아이폰4의 설계 과정에서 수신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영진에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단말기의 앞과 뒤를 강화유리로 덮고 옆 테두리를 금속 안테나로 에워싸는 디자인은 잡스가 직접 결정한 것이다. 잡스는 “그런 주장은 ‘전적으로 거짓말(total crock)’”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경고가 사전에 나왔다면 문제점을 이미 해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며 일단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아이폰4 사용자들에게 29달러짜리 범퍼 케이스를 무상으로 준다는 대책도 내놨다. 언론의 공격이 확산되고 소비자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천하의 잡스도 더 버티기 어려웠던 셈이다. 주요 외신들은 “앞으로 아이폰4의 수신 문제 논란을 진정시킬 수는 있지만 혁신적인 기능과 디자인의 대명사로 통하던 아이폰의 위상은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고 분석했다.

사과하고 대책 내놨지만 반응 차가워
잡스의 30분에 걸친 사과에도 언론이나 소비자의 반응은 차가운 편이다. WSJ는 고개 숙인 잡스의 사진을 온라인 머리기사로 올리고 “애플이 ‘안테나게이트’로 곤경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는 인터넷판에서 “잡스가 자신을 일개 상품이 아닌 ‘예술품’을 창조하는 디자이너로 믿고 있다”며 “이번에도 애플 엔지니어들은 잡스를 설득하지 못했으며 그 때문에 안테나 수신 기능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는 80년대 애플이 첫 매킨토시 컴퓨터를 개발하던 시절 “회로 기판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잡스가 화를 벌컥 낸 일화를 소개하며 “잡스는 ‘쿨(cool)’하고 ‘기발한(clever)’ 디자인에 치중하는 성향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번 회견이 끝난 후에도 컨슈머리포트는 “고객들에게 무료 케이스를 제공하는 것은 좋은 첫걸음이지만 장기적인 수정 없이는 아이폰4를 추천 못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미국소비자연맹이 발간하는 컨슈머리포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여러 휴대전화를 테스트했지만 아이폰4만 수신 결함 문제가 나타났다”며 “아이폰4는 최고 점수를 받았지만 애플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추천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힌 바 있다. PC월드 역시 ‘톱10 스마트폰’에서 1위에 있던 아이폰4를 제외했다. PC월드는 “잡스가 여전히 하드웨어 결함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지 않는 한 고객들에게 추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컨슈머리포트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소비자 매체이고 PC월드도 추천을 받으면 제품 포장에 그 사실을 업체들이 명시할 정도로 권위가 있다.

오만한 대응이 문제 키워
잡스의 오만한 대응이 이번 사건을 키웠다는 지적도 많다. 오죽하면 미 언론들이 이를 ‘안테나게이트’라고 표현했을까. 아이폰4가 처음 나왔을 때 IT전문 온라인 매체인 인가젯·기즈모도 등에서 “단말기 왼쪽 아래에 손바닥이나 손가락이 닿으면 수신 감도가 갑자기 떨어져 통화가 끊길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때 적절히 사과하고 신속히 대응했다면 ‘게이트’ 수준까지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 거란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그러나 잡스는 “결함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안테나 결함을 수정할 생각이 없느냐는 한 사용자의 메일에 “그렇게 잡지 말라(Just avoid holding it in that way)”고 답장을 보냈다. IT업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잡스다운 대응이었지만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사실 모든 휴대전화는 안테나를 손으로 감싸면 수신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손이 잘 닿지 않는 단말기 아랫부분에 안테나를 넣고, 사용설명서에도 그 부분을 잡지 말라고 명시한다. 단말기 위쪽도 손이 닿지 않지만 전자파가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안테나를 넣지 않는다. 아이폰4의 문제는 왼손으로 잡을 경우 엄지손가락 아랫부분, 오른손으로 잡으면 새끼손가락이 닿기 쉬운 곳에 안테나가 있다는 점이다. 일본 산케이 등이 실험한 결과 안테나에 손이 닿으면 수신 감도가 20㏈(데시벨) 가까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파의 세기가 거의 100분의 1로 줄어드는 셈이다. 아이폰4의 수신 성능 자체는 뛰어난 편이다. 아이폰 3GS로 통화가 되지 않는 지역에서도 아이폰4는 잘 작동한다는 경험담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하지만 손이 안테나에 쉽게 닿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잡스가 공격한 경쟁업체도 반박에 나섰다. 림의 공동 CEO인 마이크 아자리디스와 짐 바실리에는 “블랙베리 사용자들은 적절한 통화를 위해 케이스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며 “(스마트폰 모두에 수신 문제가 있다는 잡스의 주장은) 대중의 이해를 고의적으로 비틀려는 시도”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노키아는 “안테나 성능과 디자인이 상충되면 언제나 안테나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공식 반응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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