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대표, 후보 사퇴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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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 한화갑(韓和甲)대표가 30일 '기득권 포기와 백지상태에서의 신당 창당'을 언급하고 나섬에 따라 신당 창당을 둘러싼 민주당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韓대표의 발언은 '노무현(武鉉)대통령 후보-韓대표'라는 당내 주류체제를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는 또 "집주인이 방을 비워줘야 손님이 올 게 아니냐"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뿐 아니라 후보도 기득권 포기 대상에 들어가 있음을 강조했다.

8·8 재·보선 이후에 대통령후보와 당 대표가 동반사퇴해 외부 인사들의 민주당 영입을 수월하게 하자는 논리에 기초한 것이다.

이는 재·보선 결과와 상관없이 '노무현 당'으로 밀어붙이겠다는 후보측의 정면승부 논리와는 딴판이다.

따라서 韓대표의 이날 발언을 분수령으로 '-韓체제'는 사실상 금이 갔다."당 대표로서 대통령후보에 대해 지원하는 등 도리는 변함없이 할 것"이라는 韓대표의 발언은 "韓대표가 당 대표직을 던지는 순간부터 선택이 자유롭다는 의미"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韓대표의 발언을 '후보와의 결별-비주류와의 결합'이라는 단순도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후보 쪽에서 비주류 쪽으로 한 걸음 더 중심이동을 했지만 韓대표는 이인제(仁濟)의원과 박상천(朴相千)·정균환(鄭均桓)최고위원 등 비주류측과도 입장에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韓대표는 최근 민주당 내 주류·비주류측 의원들과 광범하게 접촉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韓대표는 ▶후보가 먼저 후보를 사퇴해 명실상부한 대선후보 재경선이 되도록 할 생각이 없고▶비주류는 후보의 선(先)후보사퇴가 없으면 재경선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의원들 대부분은 민주당이 깨지면 공멸한다고 우려하는 것 등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현재의 민주당으론 대선 승리가 불가능하며 '반(反)이회창 연대'만이 그나마 승부를 겨뤄볼 유일한 방안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따라서 韓대표의 신당 발언은 일종의 중재안 성격도 띠고 있는 셈이다. 즉 '노무현 당'으로의 재창당이 아니라 외부인사를 영입한 신당을 만들어야 하며, 그걸 위해선 후보가 사퇴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후 후보와 영입 인사들이 원점에서 후보·대표 경선을 하자는 게 韓대표의 복안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을 후보측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韓대표의 측근은 "韓대표 없는 후보는 독자행동을 하기 어렵고, 비주류도 -韓체제가 있는 한 운신의 폭이 좁다"면서 "결국은 韓대표의 승부수가 현실성이 있는 것으로 입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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