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권만 250억원 … 도시 먹여살리는 ‘골프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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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오픈은 세계 최고의 골프 대회이자 ‘골프 쇼’다. 대회를 관장하는 영국왕실골프협회(R&A)는 해마다 브리티시 오픈을 개최하면서 수천만 달러의 돈을 벌어들인다.

올해로 150주년을 맞는 브리티시 오픈의 총상금은 730만 달러(약 87억원), 우승상금은 129만 달러(약 15억원)다. 그런데 무슨 돈으로 선수들에게 이렇게 많은 상금을 주고, 대회를 운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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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R&A는 한국·미국·일본 등 전 세계 190개 지역에 방송중계권을 팔면서 큰돈을 번다. R&A는 중계권 수입 규모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지만 최소한 2000만 달러가 넘을 것이란 추산이다. R&A 앵거스 파쿠아 이사는 “전체 수입 규모를 밝힐 수는 없지만 절반 이상을 중계권 수입으로 벌어들인다”고 말했다.

R&A는 또 6개 기업을 패트론(후원사)으로 두고 있다. 한국의 두산도 올해부터 공식 후원사로 참가했다. 일본의 렉서스와 영국의 RBS은행 등도 브리티시 오픈의 패트론이다. R&A 측은 구체적인 후원금액을 밝히진 않지만 패트론이 되려면 최소한 수백만 달러의 후원금을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R&A는 이것만으로도 모자라 세계 각국의 패션·시계·명품 기업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다. 한국의 제일모직(빈폴 골프)도 올해부터 R&A와 라이선스 계약을 하고 ‘디 오픈’ 로고가 새겨진 골프 의류를 시장에 내놨다.

150년 전통의 브리티시 오픈은 대회 4라운드 동안 25만 명의 갤러리가 대회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첫날 1번 홀 그린에서 퍼팅 라인을 읽고 있는 호주의 로버트 앨런비. [세인트앤드루스 로이터=연합뉴스]

다음은 입장권과 기념품 판매 수입이다. 올해 입장권 가격은 정규 라운드의 경우 매일 60파운드(약 11만원)다. 연습 라운드를 구경하려 해도 40파운드를 내야 한다. 1~4라운드를 모두 지켜볼 수 있는 전일 입장권 가격은 240파운드(약 44만원)다. 올해 갤러리 수는 최소한 25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대회 조직위에 따르면 개막 전 이틀간의 연습 라운드에만 3만8000명이 몰렸고, 첫날 경기가 열린 15일엔 3만4000명이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것으로 나타났다. 대회 1라운드만 치렀는데도 7만2000명이 관람했다는 것이다. 1인당 평균 30파운드(약 5만5000원)씩을 내고 25만 명이 몰려든다고 가정하면 R&A는 무려 137억원이 넘는 입장 수입을 거둔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념품 판매 수입도 적지 않다. ‘디 오픈’ 로고가 새겨진 모자 한 개의 가격이 20파운드(약 3만6000원)다. 티셔츠 한 장 가격이 50~100파운드나 된다. 그런데도 기념품 매장에선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골프팬들은 비싼 돈을 주고라도 ‘디 오픈’ 로고가 새겨진 물품을 사들이는 것이다. 심지어 디 오픈 로고가 새겨진 골프공 한 개에 4파운드(약 7300원)를 받는다. 만약 10만 명이 1인당 10만원씩만 지출했다고 가정해도 기념품 판매수입이 100억이나 된다는 이야기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대회가 끝나도 돈을 벌어들인다. 골프의 성지 세인트 앤드루스를 보기 위한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올드 코스에서 라운드를 한 뒤 ‘디 오픈’이나 세인트앤드루스 로고가 새겨진 기념품을 산다.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 트러스트의 대표를 맡고 있는 앨런 맥그리거는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장을 찾은 내장객들의 라운드 횟수가 10만 번을 넘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간 10만 라운드라면 1일 기준으로는 274라운드가 치러진다는 이야기다. 1인당 그린피로 10만원씩만 지출했다고 가정해도 하루 내장객 수입만 1억원을 훌쩍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호텔 숙박비에 먹고 마시는 비용, 기념품 구입비용까지 합치면 수입은 훨씬 늘어난다. 한마디로 골프가 인구 1만6000여 명의 세인트앤드루스 도시 전체를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세인트 앤드루스=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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