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Focus] 비즈리더와의 차 한 잔 쌤소나이트 아태사장 타인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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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매출이 18억 달러(약 2조1600억원)에 달하는 자신의 사업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굳이 월급쟁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 하긴 월급을 받는 회사도 보통 회사는 아니다. 올해 생긴 지 100년이 된 여행가방의 원조, 글로벌 가방업체 ‘쌤소나이트’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쌤소나이트의 라메시 타인왈라(51)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이다.

타인왈라 사장이 설립한 회사는 인도에 있다. 폴리머를 비롯해 다양한 플라스틱 소재를 만드는 B2B(기업 간 거래) 회사인 타인왈라 그룹이다. 인도 시장이 팽창하며 주문을 못 댈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쌤소나이트는 120여 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이지만, 매출은 한 해 12억 달러로 타인왈라 그룹보다 적다.

타인왈라 사장은 쌤소나이트 진출국 중 가장 장사가 잘되는 아시아·태평양(호주 포함)을 비롯해 중동·아프리카까지 총괄한다. 32개국에서 그에게 보고를 한다. 한 달에 일주일은 인도에서, 나머지는 전 세계를 돌며 현장을 챙기는 그는 본사 이사회 멤버 6명 중 한 명으로 미국의 구조조정 작업도 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타인왈라 사장을 인터뷰했다.

● 쌤소나이트와 일하게 된 계기는.

“미국 여행가방 회사 ‘아메리칸 투어리스트(AT)’의 인도 법인 인수과정에서 시작됐다. 1994년 미국 AT 본사를 쌤소나이트가 인수했고, 나는 AT 인도 법인을 인수하려고 쌤소나이트 본사에 의사타진을 했다. 쌤소나이트는 인수 대신 ‘우리와 합작법인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96년 내가 120만 달러, 쌤소나이트 본사가 180만 달러를 투자해 합작법인을 만들었다.”

● 하지만 인도 합작법인은 2년 만에 도산했다.

“경영은 쌤소나이트 측이 했다. 수출은 잘됐는데 내수가 문제였다. 당시 인도엔 제대로 된 쇼핑몰이 없었다. 판매 5년이 됐는데 어디서 파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로컬 업체는 개인 가게들이 쌤소나이트 대신 자기네 제품을 팔면 수수료를 더 얹어줬다. 인도에선 여행가방이 주로 신혼부부 선물용이었는데 인도인이 불길하다고 여기는 검은색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도산할 수밖에. 큰돈을 날렸다. 하지만 더 속상한 것은 지인들의 비웃음이었다. 소비재 분야에 멋모르고 뛰어드니 당연한 결과라고 쑥덕거렸다.”

● 어떻게 사업을 다시 일으켰나.

“돈보다 체면을 회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만 내게 전권을 주고, 그래도 안 되면 철수하라고 본사를 설득했다. 인도인은 열차를 많이 타는데 쌤소나이트 가방은 두꺼워 짐칸에 올릴 수 없었다. 두께를 1~2인치 줄이고, 남자용은 파란색, 여자용은 빨간색 등으로 바꿨다. 개인들이 하는 독립 로드숍도 모집했다. 99년까지 로드숍을 50여 개로 늘렸다. 그러자 인도 법인이 가장 잘나가는 법인으로 바뀌었다. 현재 로드숍은 360여 개에 달한다. 로컬화와 유통 혁신이 비결인 셈이다.”

● 아시아 시장이 차지하는 위치는.

“2004년 아시아는 전 세계 쌤소나이트 매출 중 4%에 그쳤다. 지금은 38%를 아시아에서 올린다. 취임 당시 전혀 이익이 나지 않던 곳에서 이제는 전체 글로벌 시장 순익의 70%를 내고 있다.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 아시아 시장의 명품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영국 런던에 있던 최고가 라인 ‘블랙 라벨’ 디자인팀을 지난해 홍콩으로 옮겨왔다. 일본 디자이너들의 참여 비율도 높다. 한국에서 팔리는 제품의 상당수는 한국 고객을 위해 디자인을 맞춤으로 한 것이다.”

● 미국 쌤소나이트의 구조조정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한때 미국 시장도 아시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2006년 이후 제품 라인을 고급화하고 대대적으로 로드숍을 내면서 실적이 악화됐다. 로드숍을 닫고 중저가 쇼핑몰에 숍인숍 형태로 입점하는 구조조정을 하면서 실적이 크게 좋아졌다. 주력 제품 가격대도 500달러 이상에서 100달러 선으로 바꿨다. 아시아에서 미국 것을 팔려 해도 안 되고, 미국에서 아시아 것을 팔려 해도 안 되는 것이다. 아마 미국 사람들의 큰 손은 아시아에서 팔리는 제품 손잡이에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 시장까지 구조조정에 성공하면서 1분기 매출 성장률이 업계 평균인 6%를 훨씬 뛰어넘는 26% 선을 기록했다.”

● 토종 인도인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비결은.(그는 인도 란치 지역에서 태어나 인도 명문 BITS대학에서 MBA와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다.)

“나는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농사짓는 부모한테서 태어나 농사지으며 컸으니, 실패하면 다시 농사지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과감한 모험을 했다. 타인왈라 그룹도 그런 정신으로 일궜다.(그는 글로벌 화학회사 듀폰의 인도 지사 직원으로 1983년 사회에 뛰어들었다. 높은 관세와 관료주의로 현지법인 운영이 어렵게 되자 듀폰을 설득해 자신이 무역회사를 내고 듀폰을 주거래 업체로 삼는 플라스틱 원료 중개상이 됐다. 이후 직접 공장을 지어 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최지영 기자



j 칵테일 >> 잘 팔리는 가방, 나라마다 달라요


타인왈라 사장이 말하는 각국 소비자들의 너무나도 다른 가방 취향. 미국 쇼핑몰에 가보면 쌤소나이트는 이렇게 튼튼하다며 가방을 무거운 물체로 치고 뜨거운 물을 붓는가 하면 칼로 째는 시연도 한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해선 안 팔린다. 한국은 디테일이 매우 중요하다. 커다랗고 단순하면서 튼튼한 가방보다는 섬세하고, 디자인이 예쁜 제품을 선호한다. 일본은 한국과 매우 비슷한데 일본에서 시작된 트렌드를 한국이 받아 더 발전시키는 경우가 많다. 가격대도 다 다르다. 100달러짜리는 인도에선 매우 비싼 제품이지만 일본에선 500달러 정도는 돼야 팔린다. 아시아 시장에선 매출의 80~85%를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한 명품 라인이 차지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영국 유명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과 일본 디자이너들이 협업해 만든 명품 라인도 미국에선 안 팔았다. 알렉산더 매퀸 라인은 1600달러짜리도 있다. 중국은 지방마다 각기 다른 나라처럼 취향이 다양하다. 북쪽은 일본·한국의 영향이 크다. 서쪽 내륙으로 가면 전통의 가죽제품이나 번쩍거리는 제품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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