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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석탑은 고려중기 건축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강원도 오대산(五臺山) 월정사(月精寺)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8각9층 석탑(국보 48호)이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석탑은 지금까지 10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왔는데, 최근 탑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를 마친 조계종 문화유산발굴조사단(단장 정각 스님)과 한서대학교 조사단은 "탑 주위에서 나온 동전과 기와조각의 연대로 미뤄 일러야 12세기 초에 세워졌다"고 밝혔다. 10세기라면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 초에 해당하며, 12세기면 고려 중기에 해당된다.

발굴된 유물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12세기 초에 만들어진 중국 동전 숭녕중보(崇重寶)와 성송원보(聖宋元寶), 그리고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의 이름이 적힌 암막새(기왓고랑 끝의 암키와)다. 중국 동전은 석탑이 세워진 지표면보다 아래쪽에서 출토됐다. 따라서 동전이 묻힌 이후, 그 위에 석탑이 세워졌다고 봐야 한다. 일러야 12세기 초에 만들어졌다는 추론의 근거다.

세종대왕의 두 형 이름이 나란히 적힌 암막새는 1446년(세종 2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세종대왕이 월정사의 중창을 지원했다는 증거다. 월정사는 불교에 심취했던 세조가 직접 방문하고 중창을 지시했던 절로 유명한데, 그보다 앞서 세종대왕 때부터 왕실에서 특별지원했던 사찰이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조선왕조가 억불숭유(抑佛崇儒)를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앞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건국 초 왕조와 불교의 관계는 매우 긴밀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탑 주변을 파본 결과 탑이 서 있는 지점이 계곡물이 흐르던 개천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탑이 모래가 많이 섞인 흙 위에 세워져 기반이 허약해 안전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탑을 만들 당시 기초를 보강하기 위해 20㎝ 깊이로 흙을 다져넣는 보강 공사를 한 다음에 기단석을 세웠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바닥이 탑의 무게를 이겨내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조사단은 석탑의 안전성에 대한 정밀조사를 한 뒤 수리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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