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학회 세미나 지상중계]남북한 관계의 회고와 전망:남북, 북미간 합의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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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30년 동안 이뤄진 남북, 북미간 합의는 현재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향후 남북관계의 과제는 무엇일까. 미국을 비롯한 주변 4강국은 어떠한 대북정책을 펴고 있을까. 한국정치학회(회장 이정복 서울대 교수)가 주최하고 중앙일보가 후원한 '남북한 관계의 회고와 전망' 주제의 하계 학술대회가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막돼 참석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서해교전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대북 포용정책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상황에서 열려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이날 북한이 남북 장관급회담을 전격 제의함으로써 회의는 한층 열기를 띠었다. 주요 주제발표와 토론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6·15 공동선언)=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1989년에 채택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토대를 두고 '7·7 특별선언' 이래 추진된 포용정책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며 남북 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지향하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안보 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 통일방안의 접점을 찾아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현 정세하에서 '고려민주연방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방권과 외교권은 남과 북의 두 정부가 각각 보유한 채 평화공존을 통해 점진적·단계적으로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남측의 연합제가 합리적이며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처음 받아들였다.

다만 그 명칭을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하자고 한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칭은 달라도 이같이 합의한 것은 불필요한 통일논쟁을 지양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지난 10여년간의 남북관계 경험을 감안해 앞으로 상호 신뢰구축,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추진해야 한다. 특히 ▶끊어진 철도·도로 연결▶개성공단 건설▶금강산 관광사업 활성화▶군사 신뢰구축 조치▶이산가족 문제 해결 제도화 등 5대 핵심과제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한승주 고려대 총장서리(북·미 제네바 합의)=94년 제네바 합의의 가장 큰 의의는 북한 핵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또 한반도에서의 긴장고조를 방지함으로써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유지의 기초도 마련했다.

이 시점(2002년)에서 관심사가 되고 있는 문제점은 북한 핵문제의 발단이 된 과거 활동의 규명, 즉 특별사찰과 관련된 것이다. 미국의 일부 핵 전문가들과 강경파 의원들은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이 약속한 특별사찰을 경수로의 핵심부품이 전달될 2005년이 아니라 최소한 3년 전인 올해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별사찰이 시작되더라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요구하는 과거핵 활동의 규명을 위해서는 3~4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에 대해 핵심부품이 전달되기 3년 전에 특별사찰을 받을 의무는 없다거나 특별사찰이 시작되면 완료되지 않더라도 경수로 사업은 계속돼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은 3년 후 특별사찰이 완료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경수로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는 늦어도 2005년께는 제네바 합의와 관련된 분규와 그에 따른 위기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예고한다.

◇정홍진 전 적십자회담 예비회담 대표(7·4 남북 공동성명)=한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의미하는 7·4 남북 공동성명 발표 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대화없는 대결이었으나 앞으로는 대화있는 대결의 시대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에 7·4 공동성명의 역사적 의미가 함축돼 있다고 본다.

7·4 남북 공동성명의 모태가 된 남북간 비밀 접촉은 71년 남북 적십자회담의 시작과 별개로 정치대화 통로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가동됐다. 일련의 접촉을 바탕으로 남북 공동성명의 문안작업이 72년 6월 남북간 대표인 정홍진·김덕현간 판문점 실무접촉을 통해 진행됐고,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된 것이다.

북한은 그들의 주장을 통일 3원칙 속에 포괄적으로 표현했고, 문안조정 과정에서 이를 둘러싼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한국 측의 양보로 합의됐다.

정리=오영환·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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