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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막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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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우리 민족의 DNA에는 술이 흐른다고 한다. 그래서 유전자 중 ‘아데닌’의 ‘A’는 원래 ‘알코올’이라고 우리끼리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중국 문헌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은 부여(夫餘)편에서 “나라 가운데 크게 모여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춘다(國中大會 連日 飮食歌舞·국중대회 연일 음식가무)”고 했다. 바로 영고(迎鼓)다. 이때 ‘음주가무’가 아니라 ‘음식가무’인데, 우리네는 먹는 것보다 (술을) 마시는 것이 먼저다.

한·중·일 3국의 문화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게 술이다. 삭풍이 불어 추운 중국은 돼지고기를 곁들여 40도가 넘는 ‘배갈’이 제격이다. 작은 잔을 입에 털어 넣고 ‘간베이(乾杯)’를 외친다. 기름진 음식은 찬바람에 얼굴이 트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다. 먹는 것을 우선해 나그네가 머무는 곳도 ‘판뎬(飯店)’이다.

일본은 덥고 습해 빨리 취한다. 그래서 ‘사케’를 홀짝홀짝 마신다. 한 모금만 마셔도 금세 잔을 채워 주는 것은 건배로 인한 만취를 경계해서일까. 습해서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이 창궐하니 자주 씻을 수밖에. 그래서 ‘료칸(旅館)’마다 목욕통이 있다. 중국이 씻지 않는 것이나, 일본이 자주 씻는 것은 생존의 지혜가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우리는 넉넉한 사발에 인정이 철철 넘치는 막걸리다. 벌컥벌컥 마신다. 안주는 풋고추에 오이 하나면 족하다. “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 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박목월 ‘나그네’)가 몸을 뉘는 곳은 그래서 ‘주막’이다. 역시 막걸리는 “장사 안 되는/외딴 집/되리라고는/생각도 않는 집/풋마늘 한 대궁에/막걸리 한 모금/혼자 기울이는/이 쓸쓸한/맛”(김익두 ‘술맛’)이 최고다. 겨울철엔 소주도 마신다. 시인 백석은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燒酒)를 마신다”고 했다. 그래도 백의민족에게는 역시 걸쭉한 막걸리다.

이런 막걸리가 보릿고개와 밀주단속에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런데 국산 막걸리의 원료에서 우리 쌀 비중은 불과 13.6%라고 한다. 나머지는 값싼 수입쌀이나 밀이다. 이 와중에 정부는 쌀이 남아돌자 사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짜고 있다고 한다. 그럴 바에 가격을 맞춰 국산 쌀 막걸리를 활성화하는 게 낫겠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 했다. 기왕이면 풍토에 맞는 쌀 막걸리가 우리의 면면한 정서를 보전하는 길이기도 하지 않겠나.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