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바다 가처분결정·기획사 비리 회오리 가수들 자기목소리 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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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최근 인터넷 음악 공유 사이트 '소리바다'에 대한 법원의 가처분 결정과 연예 기획사들의 PR비 비리 사건과 관련, 당사자의 한 축인 가수들이 속속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특히 요즘엔 일부 '의식있는' 라이브 가수들뿐 아니라 댄스 가수 등 신세대 대중 음악인까지 이에 가세할 조짐이어서 주목된다.

◇"MP3,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소리바다 가처분 결정을 둘러싸고 네티즌과 음반업계의 입장이 대립한 가운데, 인기가수 왁스 등이 MP3 파일을 무료로 내려받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최근 3집 앨범을 내놓은 왁스는 지난 7일부터 부산·대전·대구·광주 등 지방을 돌며 팬 사인회를 겸한 'MP3와 불법복제 추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는 "음반시장이 점점 위축되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불법 복제음반의 유통과 무분별한 MP3파일 이용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물론 내가 나선다고 사정이 금세 달라지진 않겠지만 누군가는 나서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거창하게 무슨 운동을 주도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저 가수로서 음악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알리고 싶은 소박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또 그룹 신화의 멤버인 김동완도 자신이 진행하는 SBS 라디오 '김동완의 1010클럽' 홈페이지에 소리바다 폐쇄에는 반대하지만 MP3 음악이 너무 활성화되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을 올렸다. 그는 "MP3는 소리를 압축시키면서 아주 미세한 소리들은 깎아 내버리는 기술"이라면서, MP3로 음악을 듣는 것은 좋은 음반을 사기 위한 과정 정도여야지 완전한 대체물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소리바다 때문에 앨범 제작자들이 법적 소송을 걸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MP3를 좋아한다는 건 정말이지 창피한 일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더 자두도 방송이나 공연 무대를 통해 MP3가 뮤지션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막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요 프로에서 '노래'가 하고 싶어요"=검찰의 PR비 수사에 대한 가수들의 입장은 각자 기획사 및 방송사와의 관계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윤도현 밴드·크라잉 넛·강산에 등 일부 가수는 성명서를 작성, 다른 가수들에게서 서명을 받아 이번 주 내로 발표하려던 계획을 바꿨다.

대신 그들은 각자 입장을 정리해 총서 형식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수들 스스로도 자정이 필요하며, 방송이 대중음악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대표적인 라이브 가수인 이은미는 "지방자치단체마다 공연장이 많이 생겼지만 대중음악 가수들에겐 아직도 벽이 높을 뿐 아니라 대관료도 너무 비싸다"면서 "'수요예술무대''윤도현의 러브 레터' 등 몇 안되는 '정통' 라이브 음악프로조차 각 프로그램 분위기에 맞는 몇 곡만 부르도록 하기 때문에 가수들은 오락프로에라도 나가 음반 홍보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부분의 가수들은 기획사에 묶여 자신이 원하는 음악 색깔을 고집할 수도 없고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걸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하지만 쓴소리를 제대로 해주는 평론가들이 드물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부족한 것도 이런 사태의 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가수 홍경민은 "내 노래도 댄스곡이 많지만 가능한 한 라이브로 부르려고 노력하는데 요즘엔 솔직히 왜 가수라는 직업을 택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노래하기를 즐기지 않는 후배들이 적지 않다"면서 "마이클 잭슨이나 셀린 디옹이 오락 프로에 나갔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우리나라 가수들은 그렇게 하는 걸 당연시하는 풍토도 문제있다"고 지적했다.

◇가수는 노래만 열심히 하면 된다?=가요계 현안에 대해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명하는 것에 대해 "가수는 음악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지 굳이 나설 필요가 있느냐"며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또 자칫하면 팬들의 반발을 살 우려가 있다. 실제로 왁스의 경우 일부 네티즌들에 의해 음반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반면 대중음악개혁포럼의 탁현민 간사는 "이런 문제들이 터졌을 때 당사자이기도 한 가수들의 의견은 대중이 자기 관점을 세우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면서 "시민단체들이 보다 현실적이고 건전한 대안을 마련하는 데도 가수들의 의견은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팬들이나 기획사 눈치를 보느라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가수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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