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 서늘한 공포영화 5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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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1면

피를 뚝뚝 떨어뜨리는 뱀파이어나 찐득거리는 파충류 괴물은 공포영화의 단골 방문객이다. 그러나 이들을 너무 많이 본 탓인지 이제는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 지저분해서 불쾌할 따름이다.

현대인의 차가운 감성을 건드리려면 분위기와 심리 묘사만으로도 머리가 쭈뼛 서게 만들어야 한다. 살인의 동기나 사건의 기승전결이 친절하지는 않지만, 주변과 인물 묘사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깔끔한 공포, 스릴러를 만나본다.

스콧 레널즈의 2001년 작 '스트레인저스(When Strangers Appear)'(18·콜럼비아)와 로버트 맨거넬리의 2000년 작 '애프터 이미지(After Image)'(15세·엔터원)는 영상과 음향에 신경을 많이 쓴 모던한 심리 호러물이다.

'스트레인저스'는 한적한 도로변에서 식당과 모텔을 홀로 경영하는 젊은 여성이 낯선 사내들로 인해 겪게 되는 추적과 살인과 방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사내들의 쫓고 쫓기는 관계,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키고 빼앗으려는 디스크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뽀얀 먼지 속에 얼굴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사나이, 커피 메이커에서 지글거리는 커피, 온갖 종류의 칼, 누가 악당인지 알 수 없는 상황 등이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애프터 이미지'는 연쇄 살인범의 훔쳐보기와 청각 장애인의 들리지 않는 세계, 그리고 미래를 볼 수 있는 초능력을 결합시키고 있다. 선댄스 영화제 재단의 지원을 받은 사진 작가 출신 감독 맨거넬리는 매 장면을 고독하고 황폐한 현대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영상으로 이어가고 있다.

브래드 앤더슨이 각본·연출·편집까지 도맡은 2001년 작 '세션 나인(Session 9)'(18세·아이비전)은 흉흉한 소문으로 폐쇄된 정신과 병동을 개조하는 다섯명의 인부가 겪게 되는 심리 분열로 인한 살인극. 원혼이 떠도는 거대한 병동과 예사롭지 않은 사연을 지닌 사나이들의 내면이 부딪혀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조지 A 로메로 감독은 좀비 영화 3부작 '살아난 시체들의 밤''이블 데드''죽음의 날'로 유명한 공포 영화 감독. 2000년 작인 '브루저(Bruiser)'(18세·SKC)는 샐러리맨의 분노를 살인과 연결시킨 공포물이다. 브루저라는 잡지사 디자이너인 헨리는 사장의 위선, 아내의 사치와 부정, 친구의 배신을 모른 척하고 살아왔다. 어느날 아침, 그의 얼굴에 흰 마스크가 씌어지고, 얼굴을 감출 수 있게 된 헨리는 자신을 무시해온 이들에게 복수의 칼을 들이댄다.

마크 말론의 1999년 작 '라스트 스탑(The Last Stop)'(18세·MV-net)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연상시키는 공포물. 폭설로 인해 도로가 폐쇄된 산 중 모텔에 갖힌 주인과 손님 모두가 거액의 돈과 살인 사건 용의자일 수 있다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탐욕스런 신경전과 끔찍한 살인이 순백의 눈과 대비돼 한 여름 태양 빛을 잊게 만든다.

옥선희(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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