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험거부 72%는 ‘친전교조 교육감’ 강원·전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시험을 보라는 얘기인지, 보지 말라는 것인지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학업성취도 평가 첫날인 13일 전북 전주 시내의 학교에서 만난 교사들은 갈팡질팡하는 정책과 지침에 불만을 쏟아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 전원이 평가에 참석하도록 유도하라’고 하고, 전북도교육청은 ‘학생·학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라는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을 거부한 일부 학생이 13일 서울 성산동 성미산학교(대안학교)에서 농성장을 찾아보는 현장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참가해 토론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중학교의 교장은 “평가에 불참한 학생을 처리하는 것이 논란이 될 것”이라며 곤혹스러워 했다. ‘학생들에게 시험을 보도록 유도하고, 불참학생은 결석처리하라’는 공문(교과부)과 ‘미응시자를 위한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이를 수업으로 인정해 무단결석 처리를 하지 말라’는 공문(전북도교육청)이 함께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날 3학년 280여 명 중 7명의 학생이 평가를 거부한 전주 우아중학교는 2층 도서실·사회교과실 등에서 대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1교시에는 ‘물질과 정신’을 주제로 논술수업을 했고, 2교시에는 원주율(∏)암기와 수학퍼즐 맞히기 게임을 했다. 3교시에는 영어소설 ‘The Little Prince(어린왕자)’를 해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모양은 “시험보기 싫어서 나왔다. 부모님이 처음엔 시험을 치라고 했으나 내가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다’며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리는 남학생은 “성적에 따라 개인을 서열화는 시험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하루 전까지만 해도 미응시 희망자가 20명을 넘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학생이 평가참여를 거부할 경우 교장이나 교사는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거부할 경우 무단 결석으로 처리한다’는 공문(교과부 이첩) 내용을 밝히자 7명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금암초등학교는 19명의 미응시 학생을 따로 모아 ‘속담 골든벨’ ‘신문기사를 활용한 그래프 읽기와 그리기’ ‘영어동화’ 등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강원도 동해시 창호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18명 중 11명이 평가를 거부했다. 시험 시작 5분 전인 오전 9시5분 신종승 교감과 천문수 담임 교사는 응시하지 않는 학생을 도서관으로 인솔해 학부모동의서를 확인했다. 문병주 교장이 “학부모동의서를 가져온 학생 가운데 지금이라도 응시할 학생은 교실로 가도 된다”고 했지만 평가에 참가한 학생은 더 없었다.

학교 측은 대체 프로그램 1교시에는 독서교육, 2교시는 자연관찰, 3교시에는 ‘성과 삶’을 주제로 보건수업을 했다. 대체 프로그램에 참여한 라도영양은 “지난 8일 기말고사를 봐 내 실력을 알았는데 또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부모님도 ‘꼭 필요하지 않은 시험은 보지 않아도 좋다’고 동의했다”고 말했다. 전교조 조합원이라고 밝힌 담임 천 교사는 “강원도 교육청의 공문대로 학생과 학부모가 평가를 선택할 수 있다고 알려줬을 뿐 시험을 보라, 보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떠난 학생은 30여 명에 그쳤다. 체험학습을 주관한 일제고사반대시민모임과 전교조 등은 예상보다 참가 인원이 적자 체험학습 장소를 3곳에서 2곳으로 줄였다. 마포구 성산동의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에 모인 초등학교 6학년 이모(12)군은 “부모님이 일제고사를 반대하기 때문에 무단결석 처리되는 것을 각오하고 왔다”고 말했다. 이날 성미산학교에는 초등생 9명이, 노원구 상계동 꿈틀학교에는 중·고교생 20여 명이 체험학습에 참가했다.

곽노현 교육감은 12일 오후와 13일 오전 각급 학교에 ‘대체 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시험 선택권을 부여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미응시자를 기타결석 처리하라는 전날 지시도 사실상 취소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 시험은 교과부 장관의 권한에 속해 교과부 방침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며 “결시자의 출결 처리를 학교장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춘천=이찬호 기자
서울=김민상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