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시 ‘대포항 사업’ 공사비 604억 못 낼 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재정위기를 맞고 있는 자치단체는 특별회계 전입금 5200억원에 대해 지불유예를 선언한 경기도 성남과 대전 동구청만이 아니다. 강원도 속초와 충북 옥천 등도 사태가 심각하다.

13일 강원도 속초시 대포항. 국도 7호선 옆 대포항에 대형트럭과 백호우 등 20여 대의 중장비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일부 매립부지는 아스콘 포장이 한창이었다. 피서철을 맞아 주차장을 조성하는 공사다. 이외에 바닷가에는 삼발이(테트라 포드)를 설치하는 등 방파제 공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또 방파제 안쪽으로 흙을 메우는 매립공사도 하고 있었다. 대포항을 관광항으로 개발하는 대포항 개발사업이다.

대포항 개발사업이 속초시 재정을 압박할 처지에 놓였다. 속초시와 농림수산식품부는 2003년 대포항을 종합 관광항으로 개발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어항의 기능을 살리면서도 대포항 일대를 매립해 호텔 등 관광시설과 판매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현재 공정이 76%인 이 사업은 올해 말 완공할 예정이다.

이 사업 가운데 속초시가 담당하는 호안 매립과 분양 부분은 채무부담 행위로 추진된다. 시공사인 쌍용이 자부담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속초시가 매립지를 분양해 대금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이 사업의 공사비는 604억원. 속초시는 이를 2012년까지 3년에 걸쳐 상환해야 하며, 올해 12월 31일까지 지급해야 할 돈은 330억원이다. 속초시는 이를 상환하기 위해 2007년 ㈜흥화 등 4개 업체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호텔 건립을 위한 휴게부지(2필지)를 253억원에 공급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매매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속초시는 또 3월 준공한 매립지 일부(7필지)를 매각하려 했으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실패했다. 응찰자가 아예 없었다.

속초시가 연말까지 330억원을 갚지 못하면 약정에 따라 쌍용에 미지급분에 대한 7%의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그 때문에 어떻게든 땅을 매각할 계획이다. 속초시 송재명 부시장은 “호텔 건립부지의 경우 36억원의 이행보증증권을 발행한 터라 매각에는 문제가 없다” 고 말했다. 그러나 속초시민 상당수는 대포항사업으로 시가 파산 직전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충북 옥천군은 2009년 옥천읍 가풍리에 의료기기·전자농공단지 14만2000㎡를 분양했다. 옥천군은 이곳에 식료품·금속·고무·플라스틱 관련 업체 30여 개를 입주시키기 위해 분양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말을 기준으로 분양은 3개 업체(3만3000㎡)에 불과하다. 미분양이 장기화될 경우 공단 조성을 위해 충북도 지역개발기금에서 융자받은 70억원의 지방채 이자(연리 3.5%)를 고스란히 물어야 해 재정 부담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옥천군의 올해 지방자립도는 14.4%에 불과하다.

재정 부담으로 사업을 재검토하는 자치단체도 생겼다. 강운태 광주광역시장은 최근 1조9000억원의 사업비가 드는 도시철도 2호선 건설과 남구 양과동 시립 수목원(294억원) 조성사업, 조경사업 등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지시했다. 재정자립도가 45.9%로 광역시 가운데 최하위권인 광주시의 경우 감세정책과 경기침체에 따른 내국세 감소로 중앙정부의 교부세가 줄어든 데다 일부 불요불급한 사업 강행 등으로 재정 압박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지방비로 부담해야 하는 정부와의 매칭 사업비 부족분은 2087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광주시가 추진 중인 일부 대형 사업이 축소되거나 중단되는 등 차질이 불가피 할 전망이다.

광주시 조용진 기획관리실장은 “재원이 빈약한 광주는 매년 평균 1500억~2000억원 정도의 예산 부족분이 발생한다”며 “올해는 감세정책으로 지방으로 내려올 예산이 줄었고, 준공영제에 따른 시내버스 적자 보존, 취·등록세 등 세입 감소로 예산 부족분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의 각 자치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북구와 남구·광산구는 재정이 악화되면서 9월 분부터 공무원 인건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재정 위기가 심각한 남구의 올해 부족 재원은 인건비 79억6000만원, 국·시비 보조사업 부담액 97억6000만원, 자체사업비 40억원 등 274억원 규모다. 최영호 구청장은 “올해 하반기 사업이 전면 중단될 위기다.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 생계 급여는 물론 공무원의 급료마저 지급하기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라며 “대형 프로젝트는 차치하더라도, 연간 3억∼4억원이 드는 장수연금제 사업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찬호·신진호·유지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