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테러국'꼬리표 떨어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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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이 적군파(赤軍派) 4명의 귀국을 허용한 것은 미국이 정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고 일본으로부터는 식량지원을 받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미국이 이번 조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북·미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되기 위해서는 ▶테러반대 천명▶반(反)테러 협약 가입▶적군파 추방 등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북한도 2000년 10월 조명록(趙明祿·차수)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방미시 테러반대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지난해에는 '테러자금 조달 억제에 관한 국제협약'과 '인질억류 방지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했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적군파 귀국 허용으로 테러지원국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요건을 모두 충족시킨 셈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9·11테러 이후 테러지원국에 관한 미국의 잣대가 한층 엄격해진 점을 들어 테러지원국 해제가 북한이 바라는 대로 신속히 이뤄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일본의 식량지원과 북·일관계 개선도 기대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도 10일 "납치범들이 북한정부의 허용 없이는 출국하지 못할 것이 확실하므로 북한이 무언가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본은 북한이 납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20여명의 일본인 실종자 문제에 진전이 없다는 이유로 올들어 대북 식량지원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북한은 납치범 귀국으로 일본 내 대북한 여론이 호전되고 실종자 문제도 희석되면서 식량지원·수교교섭이 재개되길 원했을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역시 미국의 시각이다. 미국이 북한의 조치를 긍정적으로 여길 경우 북·미관계는 미국의 대북특사 파견→북·미대화 재개→테러지원국 해제→북한 핵사찰 시작→대북 경제제재 해제→미사일 협상 등의 순서로 풀려나갈 수 있다.

반면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때는 북한의 핵사찰 거부 및 미사일 발사 위협이라는 시나리오에 따라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요도호 사건이란=1970년 3월 31일 일본 적군파 9명이 도쿄 하네다(羽田)공항에서 후쿠오카(福岡)로 향하던 여객기 요도호를 탈취, 승객 1백29명을 인질로 잡고 북한으로 갈 것을 요구한 사건.

정부는 당시 요도호를 평양 대신 김포로 유도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사흘간의 협상 끝에 승객들을 석방하는 대신 일본 운수성 정무차관 등 4명을 인질로 삼아 북한으로 도피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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